순대 속에는 왜 당면이 들어갔을까

김이 오르는 찜통에서 순대를 꺼내면 검붉은 단면 안에 투명한 당면이 촘촘하다. 그런데 속초의 아바이순대를 가르면 찹쌀과 돼지고기, 우거지가 먼저 보인다. 같은 순대라는 이름 아래 무엇이 달라진 걸까.

당면이 보이는 한국식 순대
사진 ayustety (a flickr user) · CC BY-SA 2.0

순대는 창자나 오징어에 피와 곡물, 채소, 고기를 채워 익힌 음식이다. 지역마다 속이 달랐고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의 조리법과 값싼 당면이 만나 오늘의 분식집 순대가 널리 퍼졌다. 백암순대, 아바이순대, 병천순대의 질감도 함께 살핀다.

순대를 가르면 지역이 보인다

분식집 순대의 단면은 당면이 대부분이다. 반면 백암순대에는 채소와 고기, 선지가 보이고 아바이순대는 찹쌀과 우거지가 빽빽하다.

창자는 속을 담는 껍질이면서 조리 중 터지지 않게 압력을 견디는 막이다. 공기가 많으면 삶는 동안 부풀어 꼬챙이로 구멍을 내기도 한다.

한 조각을 씹을 때 얇은 창자가 먼저 끊어지고 속의 곡물과 고기가 뒤늦게 풀린다. 굵기와 충전 밀도에 따라 같은 재료도 느낌이 달라진다.

회갈색 창자 안에 투명한 당면과 검붉은 선지가 촘촘히 박혀 있다. 순대 접시에서는 색과 윤기에 재료의 익힘과 수분 차이가 남는다. 사진만으로 순대의 질감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어느 부분이 마르고 촉촉한지는 표면에서도 드러난다.

찐 곡물과 선지의 구수한 냄새 뒤로 마늘과 후추, 부추 향이 올라온다. 순대의 첫 냄새에는 주재료뿐 아니라 불에 닿은 양념과 기름, 막 썬 고명까지 겹쳐 있다. 순대에서는 코에 먼저 닿는 향을 따라가면 익히거나 절이고 섞은 재료의 차이도 드러난다.

뽀얀 국물의 순대국
순대국에는 순대만 들어가지 않는다. 머리고기와 내장, 들깨가 뽀얀 국물에 지방과 고소한 향을 더하고 새우젓이 짠맛을 조절한다.사진 SauceSupreme · CC BY 2.0

피와 곡물을 버리지 않는 조리법

가축을 잡는 날에는 피와 창자처럼 오래 두기 어려운 부위를 바로 손질해야 했다. 곡물과 채소를 섞어 창자에 채우면 한꺼번에 익혀 나눌 수 있었다.

순대와 비슷한 혈액 소시지는 여러 문화권에 있지만 한국 순대는 찹쌀, 당면, 숙주, 우거지처럼 곡물과 채소의 비중이 크다.

옛 조리 기록과 지역 전승은 한 가지 표준을 보여 주지 않는다. 손에 잡히는 곡물과 돼지 부위가 무엇이었는지에 따라 속이 달랐다.

한국전쟁 뒤 피란민 음식이 여러 지역에 퍼지고 값싼 당면을 채운 공장식 순대가 분식 시장과 함께 성장했다. 순대 역사에서 이 변화는 오래된 방식을 없애지 않았지만 조리 시간과 한 끼의 크기, 식당에서 내는 모양을 바꿨다. 순대의 기록 속 음식과 지금 눈앞의 접시가 완전히 같지 않은 까닭이다.

당면은 어떻게 가장 흔한 속이 됐을까

고구마 전분 당면은 말려 보관하기 쉽고 삶으면 부피가 늘어난다. 선지와 채소를 조금 섞어도 순대 한 줄을 안정적으로 채울 수 있다.

도시의 분식집과 포장마차가 늘면서 일정한 굵기와 가격의 순대가 필요했다. 공장에서 만든 당면순대는 빨리 데워 썰어 팔기 좋았다.

당면이 선지와 지방을 흡수해 표면은 윤기가 난다. 찹쌀순대보다 가볍고 미끄러워 떡볶이 양념이나 소금에 곁들이기 쉽다.

찜통 뚜껑을 열면 증기가 빠지고 칼이 굵은 순대를 눌러 써는 둔한 소리가 난다. 순대 준비 과정에서 나는 소리에는 손과 도구가 움직이는 순서가 담긴다. 순대 조리에서는 소리가 거칠어지거나 잦아드는 순간마다 다음 작업이 이어진다.

조리 과정에는 큰 솥과 찜통, 속을 채우는 깔때기 등이 등장한다. 순대에 쓰는 도구는 재료를 나누고 모양을 잡고 담는 방식을 바꾼다. 순대의 크기와 표면도 이 도구의 형태에 따라 달라진다.

아바이순대가 든 국밥
아바이순대는 굵고 속이 조밀하다. 찹쌀과 돼지고기, 채소를 넉넉히 넣어 당면순대보다 한 조각의 무게와 씹는 시간이 길다.사진 lazy fri13th · CC BY 2.0

아바이순대는 오징어에도 속을 채운다

함경도식 순대는 돼지 대창에 찹쌀과 고기, 채소를 넉넉히 넣어 굵게 만든다. 한국전쟁 뒤 피란민이 모인 속초 아바이마을에서 지역 음식으로 알려졌다.

돼지창자를 구하기 어려울 때 오징어 몸통을 껍질처럼 쓰기도 했다. 오징어순대는 흰 살 안에 찹쌀과 채소가 붙어 바다 향과 곡물의 구수함이 함께 난다.

전을 부치듯 달걀물을 입혀 지지면 겉면이 노릇하고 속은 촉촉하다. 찐 순대와 달리 오징어 가장자리에 구운 향이 붙는다.

맛의 바탕은 돼지창자와 선지, 찹쌀 또는 당면, 부추와 우거지에서 시작된다. 순대에서는 같은 재료를 써도 손질과 익히는 순서가 달라지면 단맛과 짠맛, 지방의 무게가 달라진다. 순대의 맛을 양념의 양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백암장과 병천장은 다른 순대를 남겼다

용인 백암순대는 다진 채소와 고기, 선지를 채운 굵은 순대로 알려져 있다. 죽산 일대의 조리법이 백암 오일장을 통해 이어졌다는 설명이 전한다.

천안 병천순대도 장터와 돼지 도축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채소가 넉넉하고 껍질이 얇아 국밥에 넣었을 때 속이 부드럽게 풀린다.

지역 이름이 붙어도 가게마다 배합은 다르다. 선지 비율과 채소의 크기, 찹쌀과 당면의 양이 한 조각의 색과 향을 바꾼다.

이 음식이 놓이는 곳으로는 오일장과 분식집, 속초 아바이마을과 용인 백암장 등이 있다. 빠르게 먹는 순대 한 접시와 여러 사람이 나누는 상에서는 양과 온도가 서로 다르다. 순대 곁에 놓는 반찬과 음료도 그 장소의 생활 리듬을 따른다.

매끈한 당면과 퍽퍽한 간, 폭신한 허파와 쫄깃한 창자가 한 접시에 놓인다. 순대의 차이는 재료 목록만 읽을 때보다 한입 안에서 더 선명하다. 순대 한입에서는 부드러운 부분과 단단한 부분, 마른 겉과 촉촉한 속이 번갈아 들어온다.

간과 허파를 곁들인 순대 접시
분식집 순대 접시에 간과 허파가 함께 놓이는 것은 돼지의 여러 부위를 한꺼번에 삶아 팔던 장터 음식의 흔적과 닿아 있다.사진 s nak · CC BY 2.0

순대국은 남은 부위를 한 솥에 모은다

순대국에는 머리고기, 볼살, 오소리감투, 곱창 같은 부속이 함께 들어간다. 서로 다른 지방과 콜라겐이 국물에 녹아 뽀얗고 끈끈한 질감을 만든다.

들깨가루는 고소한 향을 더하고 국물 표면의 지방감을 흡수한다. 다진 양념을 풀면 고추의 매운맛과 마늘 향이 국물 전체로 번진다.

새우젓은 작은 양으로도 짠맛과 발효 감칠맛을 더한다. 한 숟갈을 넣을 때마다 돼지 냄새의 인상이 달라진다.

김이 오를 만큼 뜨거울 때 창자는 부드럽고 식으면 지방이 굳어 탄력이 강해진다. 천천히 먹는 동안 순대의 온도가 내려가면 향이 약해지거나 또렷해지고 표면과 속의 씹힘도 달라진다. 막 나온 순대의 한입과 몇 분 뒤의 한입은 같지 않다.

왜 간과 허파가 한 접시에 놓일까

분식집에서는 순대와 함께 삶은 간과 허파를 내는 곳이 많다. 돼지 부속을 버리지 않고 한 솥에서 익혀 팔던 방식이 간단한 모둠 접시로 남았다.

간은 수분이 적어 퍽퍽하고 진한 철분 맛이 나며 허파는 공기층이 많아 폭신하다. 순대의 미끄러운 당면과 정반대의 식감이다.

따뜻할 때는 부드럽지만 식으면 간은 빠르게 마르고 허파는 탄력을 잃는다. 갓 썬 접시와 포장해 둔 접시의 차이가 큰 이유다.

얇은 창자는 탱글하게 끊기고 당면은 미끄러우며 찹쌀순대는 속이 묵직하게 씹힌다. 순대 한 접시에서 한 가지 질감만 이어지지 않는 것은 재료마다 수분과 섬유, 지방의 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순대 접시에서도 어느 부분을 먼저 집는지에 따라 씹는 시간이 달라진다.

선지와 돼지고기의 짙은 맛을 찹쌀과 당면이 누그러뜨리고 채소가 단맛을 보탠다. 순대에서는 짠맛과 단맛, 산미와 지방의 무게가 한꺼번에 오기보다 순서를 두고 겹친다. 순대의 첫맛이 지나간 뒤에는 주재료의 단맛이나 고소함이 다시 드러난다.

굵게 썬 피순대
피가 많이 든 순대는 단면이 짙고 촉촉하다. 막 삶았을 때는 향이 강하지만 소금이나 새우젓, 지역별 양념이 그 무게를 나눈다.사진 lazy fri13th · CC BY 2.0

지역마다 찍는 장이 다르다

서울의 소금, 충청과 수도권의 새우젓, 부산·경남의 막장, 전라도 일부의 초장은 순대 맛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간다.

막장은 된장과 고추, 마늘의 구수하고 매운 향을 더한다. 초장은 식초의 산미와 고추장 단맛이 선지의 무게를 빠르게 끊는다.

순대 자체의 배합뿐 아니라 곁들이는 장도 지역 기억의 일부다. 같은 당면순대를 받아도 첫입의 냄새와 마지막 맛이 달라진다.

들깨와 후추, 새우젓의 발효 향이 돼지 지방의 무게를 정리한다. 그릇에 남은 순대의 향에는 처음 코에 닿았던 냄새와 다른 부분이 있다. 순대의 마지막 향은 혀에 남은 짠맛이나 단맛보다 늦게 느껴져 첫입과 다른 인상을 남긴다. 온도가 내려간 뒤에도 순대의 향은 한동안 입과 코 사이에 남는다.

SOURCES

더 확인하고 싶다면

순대의 구체적인 기원보다 향토음식 자료에서 확인되는 재료와 장터 전승, 전쟁 이후의 확산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사진은 Wikimedia Commons에서 재사용 조건을 확인한 파일만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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