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음식디미방』의 채소 잡채와 20세기에 퍼진 당면 잡채를 나누어 살핀다.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당면의 식감, 재료를 따로 익히는 이유, 잔칫상에서 잡채를 준비하는 풍경, 당면 없는 전주 콩나물잡채와 중국집 잡채밥의 차이까지 한 접시 안팎의 이야기를 담았다.
잡채를 집으면 당면이 먼저 따라온다
잡채 한 접시는 면부터 보인다. 간장빛이 밴 당면이 둥글게 쌓이고, 그 사이로 주황색 당근과 초록 시금치가 길게 섞여 있다. 표고버섯과 쇠고기는 비슷한 갈색이라 젓가락으로 집기 전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젓가락을 넣어 한 번 들어 올리면 당면 여러 가닥이 서로 붙어 따라온다. 면은 매끈하게 미끄러지고, 끝에 걸린 시금치와 버섯이 잠시 늘어지다가 접시로 떨어진다. 따뜻할 때는 면이 부드럽고 잘 휘어진다.
첫입에는 간장과 참기름 냄새가 먼저 난다. 면을 씹으면 달고 짭짤한 양념이 나오고, 당근은 가운데가 살짝 단단하다. 표고버섯은 부드럽지만 향이 짙고, 목이버섯이 들어간 잡채에서는 오독오독한 식감이 끼어든다.
달걀지단은 면보다 폭신하다. 얇게 부친 노란 지단이 당면 사이에서 쉽게 끊어지고, 소고기는 가늘게 썰었어도 씹을수록 짭짤한 육향을 낸다. 깨는 작지만 씹힐 때마다 고소한 향을 더한다.
잡채가 식으면 냄새보다 식감의 변화가 먼저 느껴진다. 따뜻할 때 부드럽던 당면이 조금 단단해지고 서로 더 잘 붙는다.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잡채는 면이 뻣뻣해져 젓가락으로 한 덩어리씩 들리기도 한다.
다시 데우면 당면은 풀어지지만 처음과 똑같지는 않다. 팬에 기름을 조금 두르고 볶으면 표면은 매끈해지고, 바닥에 닿은 가닥은 가장자리가 살짝 눌어 쫄깃하다. 전자레인지에서는 면이 빠르게 부드러워지지만 수분이 적은 부분은 질길 수 있다.
이 접시에서 가장 많은 재료는 당면이다. 그래서 잡채를 면 요리로 생각하기 쉽다. 식당 반찬이나 잔칫상에서도 당면이 빠진 잡채를 만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이름을 풀어보면 다른 음식이 나온다. 잡채의 ‘잡’은 여러 가지가 섞였다는 뜻이고 ‘채’는 나물과 채소를 가리킨다. 처음 이름이 붙었을 때 중심에 있던 것은 면이 아니라 여러 채소였다.
『음식디미방』에는 면이 없었다
17세기 후반에 쓰인 『음식디미방』에는 잡채 만드는 법이 나온다. 지금처럼 당면을 삶아 간장 양념에 버무리는 조리법은 아니다. 책에 적힌 재료부터 전혀 다르다.
오이와 무, 숙주를 비롯해 도라지와 미나리, 고사리, 두릅, 가지가 들어간다. 표고와 송이, 석이 같은 버섯도 여럿 쓰고 꿩고기까지 더한다. 기록에 나오는 나물과 버섯은 스무 가지가 넘는다.
모든 재료를 같은 방법으로 익히지도 않았다. 생으로 쓰는 채소가 있고 삶아서 찢는 나물과 고기가 있었다. 길이는 한 치 정도로 맞추고, 재료마다 기름과 간장을 더해 따로 손질했다.
지금 접시와 닮은 점도 있다. 재료를 가늘고 길게 썬다는 것, 한 가지 맛으로 뭉개지 않게 따로 익힌 뒤 합친다는 점이다. 초록과 흰색, 갈색 재료가 섞이도록 담는 모습도 오늘의 잡채를 떠올리게 한다.
색을 내는 방법은 훨씬 낯설다. 동아라는 박과 채소에 맨드라미나 머루의 붉은 물을 들였다. 당근과 파프리카가 흔하지 않던 때에도 접시 안에 붉은빛을 넣으려 한 것이다.
재료 목록이 길지만 조리서는 모두 갖춰야 한다고 못 박지 않았다. 구하기 쉬운 것을 골라 쓰라는 뜻의 설명이 함께 전한다. 계절과 집안 형편에 따라 들어가는 채소가 달라질 수 있었다.
『음식디미방』의 잡채를 지금의 당면 잡채와 같은 음식으로 보면 차이가 너무 크다. 국립민속대백과사전도 당면을 넣은 잡채와 넣지 않은 잡채를 나누어 설명한다. 같은 이름 아래 조리법이 크게 바뀐 셈이다.
옛 잡채를 복원한 사진에서는 당면의 갈색 윤기가 보이지 않는다. 잘게 썬 채소와 버섯이 그릇을 채우고, 그 위에 따뜻한 즙을 뿌린다. 젓가락으로 면을 길게 들어 올리는 장면도 없다.

옛 잡채에는 소스가 따로 있었다
『음식디미방』 잡채에서 눈에 띄는 것은 ‘즙’이다. 다진 꿩고기와 장, 참기름, 밀가루 등을 넣어 끓인 소스를 채소 위에 끼얹었다. 지금 잡채처럼 간장 양념이 당면 속까지 배는 방식과 다르다.
밀가루가 들어간 즙은 물처럼 흘러내리기보다 재료 표면에 얇게 붙었을 것으로 보인다. 부드러운 동아와 아삭한 오이, 질긴 도라지, 향이 강한 버섯을 한입에 먹으면 식감이 차례로 바뀐다.
꿩고기는 지금 잡채에 자주 쓰는 소고기와도 다르다. 살은 비교적 담백하고 결이 있으며, 다져서 소스에 넣은 고기와 삶아 찢어 섞은 고기가 각각 맛을 냈다. 후추와 천초, 생강 향도 따라왔다.
천초는 산초와 가까운 향신료다. 혀를 얼얼하게 만드는 중국 화자오와 완전히 같은 맛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향이 강하고 알싸하다. 참기름 냄새와 생강의 매운 향 사이에서 존재감이 컸을 것이다.
복원된 옛 잡채를 보면 채소가 소스에 잠겨 있지 않다. 가늘게 썬 재료를 접시에 모으고 걸쭉한 즙을 조금 더한다. 오늘날의 따뜻한 나물 모둠이나 채소볶음에 가까운 모습이다.
이 조리법은 손이 많이 간다. 채소마다 씻고 썰고 데치는 시간이 다르고, 버섯과 고기도 따로 익혀야 한다. 한 접시에 들어가는 재료 수가 많아 작은 양을 만들기에도 준비할 그릇이 늘어난다.
그렇다고 옛 잡채를 지금보다 더 옳은 형태라고 부를 이유는 없다. 다만 당면이 잡채의 필수 재료가 아니었던 시기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잡채’라는 이름이 먼저 있었고 당면은 훗날 그 안으로 들어왔다.
그 변화가 기록에서 선명해지는 것은 20세기다. 마른 면을 오래 보관하고 많은 양을 삶을 수 있게 되면서 잡채 접시의 중심도 채소에서 당면으로 옮겨갔다.
당면은 20세기에 자리를 잡았다
당면은 밀가루 국수처럼 반죽을 얇게 밀어 자른 면이 아니다. 전분을 물과 섞어 면 모양으로 뽑고 말린다. 한국에서 흔히 쓰는 제품은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다.
국립민속대백과사전의 잡채 항목은 1919년 황해도 사리원에 당면 제조 공장이 들어섰다고 설명한다. 이어 1930년대 조리서에서 당면을 넣은 잡채가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지금과 같은 잡채는 조선 후기보다 이 시기와 더 가깝다.
초기의 조리서가 당면을 곧바로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1924년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잡채에 당면을 데쳐 넣는 일을 탐탁지 않게 보는 내용이 나온다. 채소 음식의 성격이 흐려진다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1930년대가 지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조선요리법』에는 당면을 넣은 잡채와 넣지 않은 잡채가 함께 실렸고, 이후 조리책에서는 당면 잡채가 점점 익숙한 형태가 됐다.
마른 당면은 채소보다 오래 둘 수 있다. 필요한 만큼 꺼내 삶으면 부피가 크게 늘어나 큰 접시를 채우기 쉽다. 계절에 따라 구하기 어려운 나물을 스무 가지씩 준비하는 것보다 재료 구성도 단순해졌다.
당면 자체의 맛은 강하지 않다. 대신 간장과 설탕, 참기름을 잘 받아들인다. 면이 접시의 양을 늘리면서도 고기와 버섯, 채소에서 나온 양념을 함께 끌고 간다.
1930년대 잡채도 지금과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도라지와 숙주, 미나리, 황화채를 쓰고 전복이나 해삼을 더한 조리법이 확인된다. 당면이 들어온 뒤에도 한동안 옛 채소 구성과 새 면이 한 접시에 겹쳐 있었다.
오늘날에는 당면이 빠지면 잡채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한 세기 남짓한 시간 동안 새 재료가 음식 이름의 중심을 바꾼 드문 경우다. 마른 당면 한 묶음이 그 변화의 가장 뚜렷한 증거다.

마른 당면은 어떻게 투명해질까
봉지에서 꺼낸 당면은 회백색에 가깝고 단단하다. 손으로 구부리면 휘기보다 뚝 부러진다. 가닥이 가늘어 보여도 그대로 씹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끓는 물에 들어가면 모습이 빠르게 바뀐다. 불투명하던 면이 점점 맑아지고, 젓가락으로 들었을 때 부드럽게 휜다. 물을 먹은 전분 면은 마른 상태보다 훨씬 굵고 무거워진다.
잘 삶은 당면은 이를 대면 쉽게 끊어지지 않고 약간 버틴다. 하지만 가운데에 딱딱한 심이 남을 정도로 질기지는 않다. 씹을수록 탄력이 느껴지고 표면은 매끈하다.
삶는 시간이 너무 짧으면 가운데가 뻣뻣하다. 반대로 오래 삶아 퍼지면 집는 순간 가닥이 끊어지고 입안에서는 물러진다. 같은 양념을 써도 면 상태에 따라 잡채 맛이 크게 달라진다.
삶은 당면을 간장 양념과 함께 볶으면 옅은 갈색이 밴다. 투명한 가닥 사이로 팬 바닥이 비칠 만큼 맑지만, 양념이 묻은 부분은 윤기가 난다. 참기름은 불을 끈 뒤 넣을 때 향이 더 선명하다.
설탕은 단맛만 더하지 않는다. 간장과 함께 면 표면에 남아 윤기를 만들고, 식었을 때 가닥이 서로 달라붙는 데에도 영향을 준다. 단맛이 많은 잡채는 차갑게 식으면 더 끈끈하게 뭉치기도 한다.
따뜻한 당면은 부드럽고 잘 미끄러진다. 한 김 식으면 탄력이 올라오고, 완전히 차가워지면 조금 질겨진다. 잔칫상에서 잡채가 식은 상태로 놓여도 면이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 이유다.
잡채가 남았을 때 밥과 함께 볶으면 면의 가장자리가 팬에 닿아 살짝 눌어붙는다. 부드러운 가닥 사이에 쫄깃하고 고소한 부분이 생긴다. 남은 잡채를 다음 끼니에 먹을 때 자주 만나는 맛이다.

재료는 왜 따로 익힐까
잡채를 만들기 전 식탁에는 작은 접시가 여러 개 놓인다. 데친 시금치, 볶은 당근과 양파, 양념한 고기, 불린 버섯이 따로 담긴다. 완성된 한 접시보다 준비 중인 자리가 더 넓다.
채소마다 익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당근은 가늘게 썰어도 가운데에 단단함이 남고, 양파는 열을 받으면 빠르게 투명해지며 단맛을 낸다. 둘을 오래 함께 볶으면 양파가 먼저 물러진다.
시금치는 끓는 물에 짧게 데친 뒤 찬물에 식히고 물기를 짠다. 오래 익히면 잎이 흐물흐물해지고 초록색도 어두워진다. 물기가 남으면 완성된 잡채 바닥에 양념물이 고인다.
표고버섯은 얇게 썰어 볶으면 향이 진해지고 가장자리가 부드러워진다. 목이버섯은 맛은 순하지만 오독오독 씹힌다. 두 버섯은 색이 비슷해도 입안에서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소고기는 간장과 마늘로 밑간해 볶는다. 채소와 한 팬에 오래 두면 고기에서 나온 물이 당근과 양파를 삶듯 익힐 수 있다. 고기 표면이 갈색으로 익을 만큼 따로 볶으면 짭짤한 맛과 구운 냄새가 남는다.
달걀지단도 마지막까지 따로 만든다. 얇게 부친 지단은 식힌 뒤 채를 썰어야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뜨거울 때 당면과 세게 섞으면 쉽게 부서져 노란 조각만 남는다.
준비한 재료는 삶아 양념한 당면과 마지막에 만난다. 이때 세게 치대기보다 아래에서 위로 들어 올리듯 섞는다. 그래야 시금치가 뭉치지 않고 지단과 버섯도 한쪽에 몰리지 않는다.
따로 익히는 과정은 번거롭지만 한입의 차이를 만든다. 당면은 부드럽고 쫄깃하며, 당근은 살짝 아삭하고, 버섯은 촉촉하다. 모두 같은 팬에서 오래 볶아 버리면 식감도 비슷해지고 색도 탁해진다.
잔칫상에서는 왜 큰 접시로 나올까
잡채는 생일이나 혼인 잔치, 명절 상에서 자주 만난다. 집에서 조금 만들려고 해도 당면 한 줌과 채소 몇 가지를 익히면 양이 금세 불어난다. 여러 사람 몫을 준비할 때는 큰 대야나 양푼이 필요하다.
재료를 미리 손질할 수 있다는 점은 큰 상차림과 잘 맞는다. 당근과 버섯, 고기를 각각 볶아 두고 당면은 상을 차릴 때 가까워져 삶는다. 마지막에 큰 그릇에서 합치면 한 접시씩 나누어 담기 쉽다.
막 무친 잡채에서는 뜨거운 참기름과 볶은 간장 냄새가 난다. 김이 오르는 동안 당면은 부드럽고 양파는 단맛이 강하다. 한두 시간이 지나면 향은 잦아들고 면의 탄력이 더 또렷해진다.
잡채는 국물이 많은 음식이 아니라 상 위에서 흘러넘치지 않는다. 뜨겁게 끓고 있는 냄비도 필요 없다. 전과 나물, 갈비찜 사이에 큰 접시로 두고 조금씩 덜어 먹을 수 있다.
한 접시에 여러 색이 보인다는 점도 잔칫상과 잘 맞았다. 갈색 당면 사이에 노란 지단과 주황 당근, 초록 시금치가 섞인다. 붉은 고추채나 잣을 얹는 집에서는 윗면이 더 화려해진다.
많이 만들수록 간 맞추기는 어려워진다. 당면이 뜨거울 때 맛본 간과 식은 뒤의 간이 다르고, 채소에서 수분이 나오면 양념도 묽어진다. 큰 대야 아래쪽에는 간장 양념이 더 많이 고일 수 있다.
그래서 상에 내기 전에 아래쪽 면을 위로 올리며 다시 섞기도 한다. 참기름과 깨를 이때 더하면 눅눅해진 향이 살아난다. 접시 가장자리에는 짧게 끊어진 당면과 당근 조각이 모인다.
다 먹지 못한 잡채는 다음 날 또 다른 음식이 된다. 밥과 함께 볶아 잡채볶음밥을 만들거나 김말이 속에 넣고, 만두소에 잘게 썰어 섞기도 한다. 큰 접시가 비워지지 않아도 다음 끼니로 이어지기 쉬웠다.
잡채라는 이름은 당면보다 넓다
전주에는 당면 없이 만드는 콩나물잡채가 남아 있다. 길게 기른 콩나물을 삶아 식히고 무와 당근, 미나리, 고사리, 다시마채를 비슷한 길이로 썬다. 오늘의 잡채보다 오래된 ‘여러 채소’라는 뜻에 가깝다.
맛은 간장과 참기름이 중심인 당면 잡채와 다르다. 고운 고춧가루와 식초, 설탕을 넣어 새콤하고 매콤하게 무친다. 겨자를 개어 넣는 방식에서는 코끝으로 올라오는 알싸한 향까지 난다.
콩나물은 당면처럼 매끈하지 않다. 줄기는 아삭하게 끊어지고 머리 부분은 단단하게 씹힌다. 무와 다시마가 함께 들어가면 한입 안에서도 수분이 많은 채소와 질긴 재료가 번갈아 나온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음식을 설과 혼인, 손님 초대 때 만들던 전북 지역 음식으로 소개한다. 겨울에 항아리에 두고 정월 대보름까지 먹었으며, 추운 날에는 살얼음이 생기기도 했다는 기록도 전한다.
중국집 메뉴의 고추잡채와 부추잡채에도 당면이 없다. 고추잡채는 피망이나 고추와 돼지고기를 가늘게 썰어 센 불에 볶고 꽃빵을 곁들인다. 부추잡채는 부추와 고기를 짧게 볶아 향을 살린다.
부추잡채를 먹으면 부추 줄기가 아삭하게 끊어지고 곧 마늘과 고기 냄새가 따라온다. 당면의 달고 매끈한 맛은 없다. 기름에 볶은 부추의 향과 돼지고기의 짭짤한 맛이 접시를 채운다.
같은 ‘잡채’라는 말이 붙어도 음식의 모양은 여러 갈래다. 전주에서는 차갑고 새콤한 콩나물 무침에 가깝고, 중국집에서는 뜨거운 채소볶음으로 나온다. 공통점은 가늘게 썬 여러 재료를 한데 모았다는 데 있다.
당면 잡채가 워낙 널리 퍼져 이런 음식의 이름이 낯설게 들릴 뿐이다. 메뉴판에서 고추잡채를 주문하고 당면이 없다고 놀라는 순간, 잡채라는 오래된 이름의 폭이 다시 드러난다.
중국집 잡채는 왜 국물이 많을까
한국식 중국집의 잡채는 잔칫상 잡채와 한눈에 구별된다. 넓은 접시 바닥에 갈색 소스가 고이고, 양파와 부추, 목이버섯, 돼지고기가 당면 사이에 섞여 있다. 집에 따라 고춧가루나 고추기름을 넣어 붉은빛도 돈다.
주문이 들어오면 센 불에 재료와 소스를 빠르게 볶는다. 양파 가장자리는 부드러워지지만 가운데에는 약간의 단단함이 남고, 목이버섯은 소스를 머금어도 오독오독하다. 불에서 내린 직후에는 김이 세게 오른다.
맛은 일반 잡채보다 짜고 매운 경우가 많다. 간장과 굴소스의 진한 맛 뒤로 고추기름의 매운 향이 따라온다. 당면은 소스를 넉넉히 머금어 입술에 미끄럽게 닿고, 밑에 고인 국물은 끝까지 뜨겁다.
잔칫상 잡채는 참기름과 깨 향이 앞서고 단맛이 부드럽다. 중국집 잡채에서는 파와 마늘, 볶은 양파 냄새가 강하고 후추가 혀끝을 자극한다. 같은 당면을 써도 양념과 불의 세기가 다른 맛을 만든다.
면의 굵기와 양도 가게마다 다르다. 당면을 적게 넣고 부추와 양파를 많이 볶는 곳이 있는가 하면, 굵은 면을 넉넉히 넣어 한 접시만으로 배가 부르게 내는 곳도 있다.
소스가 많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면이 완전히 마르지는 않는다. 대신 당면이 국물을 계속 빨아들여 점점 불어난다. 처음에는 숟가락으로 뜰 만큼 국물이 있던 접시가 식을 무렵에는 걸쭉해질 수 있다.
밥 없이 단독 요리로 주문하면 채소와 면을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다. 매운맛이 올라올 때 단무지를 한 조각 먹으면 차갑고 새콤한 맛이 입안을 바꾼다. 집 잡채 옆의 김치와는 또 다른 조합이다.
이 잡채는 명절 반찬을 데워 내는 음식이 아니다. 웍의 센 열과 넉넉한 소스, 고추기름을 이용해 주문 직후 완성하는 한국식 중화요리다. 다음 장면에서는 그 소스가 밥 위로 옮겨간다.

잡채밥은 밥과 함께 먹는다
중국집 잡채밥은 흰밥 옆이나 위에 뜨거운 잡채를 넉넉히 붓는다. 면 요리와 덮밥이 한 접시에 놓인 모습이다. 밥알 사이로 갈색 소스가 스며들고 부추와 양파가 함께 흘러내린다.
처음에는 잡채만 한 젓가락 집어 먹을 수 있다. 소스를 머금은 당면이 쫄깃하고 짭짤하다. 다음에는 숟가락으로 밥과 양파, 돼지고기를 함께 뜨게 된다.
밥은 잡채의 강한 간을 낮춘다. 매운 기름과 굴소스 맛이 흰밥에 퍼지면서 한입이 부드러워진다. 국물이 충분하면 밥알이 촉촉해지고, 적으면 볶음밥처럼 고슬고슬한 부분이 남는다.
반숙 달걀프라이를 올리는 집도 있다. 노른자를 터뜨리면 소스가 한층 부드러워지고 매운맛도 줄어든다. 가장자리의 흰자는 기름에 바삭하게 익어 당면과 다른 식감을 낸다.
당면과 밥은 모두 탄수화물이라 한 접시가 묵직하다. 대신 부추와 양파, 목이버섯이 많이 들어가면 씹는 속도가 달라진다. 면은 길게 미끄러지고 밥은 짧게 풀리며 목이버섯은 끝까지 오독거린다.
짜장면이나 짬뽕처럼 이름만 들으면 그릇 모양이 바로 떠오르는 메뉴는 아니다. 어떤 집에서는 소스가 많은 잡채 덮밥으로, 다른 집에서는 볶은 당면과 밥을 나란히 담아 낸다.
집 잡채를 밥에 올린 음식과도 다르다. 명절 잡채는 달고 고소한 맛이 강하지만 중국집 잡채밥은 짠맛과 매운맛, 뜨거운 소스가 밥을 끌고 간다. 같은 당면이 전혀 다른 한 끼가 된다.
지금 잡채 한 접시를 보면 당면이 원래부터 주인공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채소와 꿩고기에 즙을 끼얹던 음식, 고구마 전분 면을 넣은 잔칫상, 새콤한 콩나물잡채와 뜨거운 잡채밥이 같은 이름 주변에 남아 있다. 잡채는 당면이 들어온 뒤 사라진 음식이 아니라 계속 모양을 바꾼 이름이었다.

더 확인하고 싶다면
17세기 잡채와 오늘날의 당면 잡채를 같은 조리법으로 이어 붙이지 않았다. 『음식디미방』의 재료와 즙은 복원 자료를, 당면 공장과 1930년대 이후의 변화는 국립민속박물관 자료를 중심으로 확인했다. 전주 콩나물잡채는 지역 기록에 남은 조리법과 풍속만 반영했다. 사진은 Wikimedia Commons에서 재사용 조건을 확인한 파일만 골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