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의 바다는 요새와 피란처, 조선소와 여행지를 차례로 만들었다
거제를 해금강과 바람의 언덕으로만 보면 섬의 절반만 보게 된다. 거제도는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지만 주변의 칠천도·가조도·산달도와 수많은 작은 섬까지 하나의 생활권을 이룬다. 서쪽 견내량은 통영반도와 거제 사이가 가장 좁아지는 물길이고, 동쪽 옥포와 장승포는 바다 안쪽으로 깊이 들어온 포구다. 산이 해안 가까이 솟고 평지가 좁은 지형 때문에 마을은 만과 분지에 나뉘어 자리했다. 오늘도 고현·옥포·장승포·거제면이 서로 다른 중심처럼 보이는 까닭이 이 지형에 있다.
거제라는 이름은 신라 경덕왕 때인 757년 ‘거제군’으로 정리돼 기록에 나타난다. 고려시대에는 왜구를 피하기 위해 주민을 내륙으로 옮기는 공도 정책이 시행되기도 했고, 섬이라는 조건 때문에 왕족과 관리의 유배지로도 쓰였다. 1170년 무신정변으로 폐위된 의종은 거제로 쫓겨와 둔덕 일대에 머물렀다는 전승을 남겼다. 둔덕기성은 그보다 앞선 삼국시대 산성에서 시작해 고려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견내량과 서부 해안을 지키는 높은 지형이 왜 중요했는지를 보여 준다.
조선시대 거제의 행정 중심은 오늘의 거제면이었다. 객사인 기성관과 관아, 향교가 모였고, 주변 성곽은 섬의 행정과 군사 기능을 지탱했다. 그러나 거제의 역사를 크게 바꾼 사건은 1592년 임진왜란이었다.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옥포만에서 일본 수군을 공격해 첫 해전 승리를 거뒀다. 좁은 물길과 깊은 만을 잘 아는 수군에게 거제 해안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전투의 조건이었다. 옥포대첩기념공원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면 승전 기록과 실제 포구의 모양이 한 장면으로 연결된다.
근대에 들어서도 섬의 지형은 거제를 고립시키면서 동시에 피란처로 만들었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뒤 고현·수월·양정 일대에는 최대 17만3천 명을 수용한 포로수용소가 들어섰다. 철조망 안에는 막사와 병원, 급식소와 작업장이 만들어졌고, 반공포로와 친공포로의 충돌과 수용소장 납치 사건까지 벌어졌다. 수용소가 폐쇄된 뒤 많은 시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도시가 커졌다. 포로수용소유적공원에서 고현 시내가 바로 이어지는 풍경은 전쟁의 임시도시가 현재의 행정·상업 중심에 얼마나 가까웠는지를 보여 준다.
1970년대 이후 거제는 조선산업의 섬으로 다시 바뀌었다. 옥포와 장평의 깊은 만에 대형 조선소가 들어서고, 전국에서 기술자와 노동자가 모이면서 작은 어촌 주변에 아파트와 상가, 학교가 빠르게 늘었다. 거제시 공식 공장 현황에서도 조선 관련 업종은 고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옥포의 외국인 거리와 장평의 거대한 크레인, 고현의 상업지구는 관광 해안과 전혀 다른 도시의 얼굴이지만 오늘의 거제를 이해하는 데 빠질 수 없다. 이곳에서 바다는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라 선박을 설계하고 건조해 세계로 내보내는 산업 공간이다.
섬의 연결 방식도 도시를 바꿨다. 1971년 거제대교가 통영과 거제를 잇기 전까지 사람과 차량은 견내량을 배로 건넜다. 2010년 거가대교가 부산 가덕도와 장목을 연결한 뒤에는 섬의 북쪽이 새로운 관문이 됐다. 부산에서 당일치기로 들어오는 여행이 쉬워졌고 장목의 매미성과 저도, 북부 해안이 빠르게 알려졌다. 남쪽 통영을 향하던 도로와 북쪽 부산으로 열린 도로가 동시에 생기면서 거제는 더 이상 하나의 입구만 가진 섬이 아니게 됐다.
거제의 대표 풍경은 이 긴 역사와 떨어져 있지 않다. 외도 보타니아는 바람 센 작은 섬을 수십 년간 가꾼 민간 정원이고, 해금강은 파도와 절리가 만든 바위섬이다. 학동의 몽돌과 동백숲은 해안 마을이 바람을 견딘 방식과 연결되고,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는 같은 도장포에서도 잔디 구릉과 해식절벽이 얼마나 다른 장면을 만드는지 보여 준다. 고현의 전쟁 기록에서 옥포의 해전과 조선소, 남부 해안의 섬과 절벽으로 이동하면 거제는 유명한 전망대의 목록이 아니라 바다를 이용하고 견디며 살아온 도시로 읽힌다.
거제 여행 코스 관광지 Top 9
거제현의 관아와 옥포해전, 한국전쟁 포로수용소에서 시작해 외도와 해금강, 남부 해안의 절벽과 몽돌로 이어지는 아홉 곳이다. 한 도시의 역사를 따라 읽을 수도 있고, 북부·도심·남부 해안으로 나누어 관심 지역만 골라 볼 수도 있다.
01- 찾아가는 길
- 고현버스터미널에서 약 1.7km · 도보 약 25분. 터미널 앞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포로수용소유적공원 정류장까지 약 10분이다.
- 운영시간
- 3~10월 09:00~18:00 · 11~2월 09:00~17:00 · 매표는 종료 1시간 전까지 · 화요일 휴관
- 입장료
- 성인 7,000원 · 청소년·군인 5,000원 · 어린이 3,000원 · 일부 체험시설 별도
- 꼭 볼 포인트
- 디오라마보다 먼저 당시 수용소 배치도와 항공사진을 보고, 실제 잔존 유구와 재현 시설을 구분해 살펴본다.
- 자주 하는 실수
- 전쟁 체험공원으로만 생각해 기록 전시를 건너뛰기 쉽다. 경사가 있고 관람 구역이 넓어 마감 한 시간 전에 들어가면 핵심 전시를 충분히 보기 어렵다.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거제 포로수용소는 한국전쟁이 만든 거대한 임시도시였다. 1951년 고현·수월·양정 일대에 들어선 수용소에는 북한군과 중국군 포로 등 최대 17만3천 명이 머물렀다. 당시 거제 주민 수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철조망 안팎에 모이면서 도로와 부두, 병원과 급수시설이 급히 만들어졌다. 반공포로와 친공포로의 충돌, 1952년 돗드 수용소장 납치 사건은 포로 송환을 둘러싼 냉전의 갈등이 이 섬에 얼마나 밀도 높게 모였는지 보여 준다.
공원은 전쟁의 역사를 한 동의 박물관에 넣지 않고 경사진 부지 전체에 펼쳐 놓았다. 탱크전시관과 디오라마관, 포로생활관을 지나면 막사와 철조망, 잔존 건물의 기초가 이어진다. 재현 조형물과 체험시설이 눈에 먼저 들어오지만, 실제 수용소의 규모와 위치를 이해하려면 당시 지도와 항공사진, 포로 명부와 생활 자료를 오래 보는 편이 낫다. 흥남철수작전 기념 조형물에서는 포로와 피란민, 군인이 서로 다른 경로로 거제에 도착한 배경도 함께 읽을 수 있다.
고현 도심 바로 옆이라는 위치도 중요하다. 수용소가 폐쇄된 뒤 땅은 다시 시가지가 됐고, 그 위에 주택과 학교·도로가 들어섰다. 오늘의 유적공원은 원래 수용소 전체가 아니라 남아 있던 흔적을 보존하고 기억을 재구성한 공간이다. 놀이형 시설만 빠르게 지나기보다 전망이 트인 지점에서 고현 시가지를 내려다보면 전쟁의 임시도시가 현재의 생활도시 안으로 어떻게 흡수됐는지 보인다.
- 찾아가는 길
- 옥포시외버스정류소에서 약 4.5km. 옥포 시내에서 택시로 약 10분이며, 시내버스는 대첩로·팔랑포 방향 노선을 이용한다.
- 운영시간
- 기념관 09:00~18:00 · 입장은 17:00 전후 마감 · 월요일과 1월 1일, 설·추석 당일 휴관 · 야외공원 별도 개방
- 입장료
- 무료
- 꼭 볼 포인트
- 기념관의 해전 지도를 먼저 본 뒤 기념탑과 전망 구간에서 옥포만의 좁은 입구, 현대 조선소의 위치를 함께 확인한다.
- 자주 하는 실수
- 기념탑만 촬영하고 내려오기 쉽다. 옥포해전은 바다의 지형을 봐야 이해가 쉬우며, 기념관 휴관일과 야외공원 개방시간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옥포대첩기념공원
옥포는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이 첫 승리를 거둔 바다다. 1592년 5월, 이순신이 이끄는 전라좌수영 함대와 원균의 경상우수영 함대는 옥포만에 정박해 있던 일본 수군의 배를 공격했다. 부산에서 서쪽으로 보급로를 넓히던 일본군에게 타격을 주었고, 연이어 합포와 적진포에서 승전하면서 조선 수군이 남해의 주도권을 되찾는 출발점이 됐다. 육지의 연이은 패전 소식 속에서 전해진 첫 해전 승리라는 상징도 크다.
기념공원은 옥포만이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에 놓였다. 기념관에는 전투 경로와 판옥선·왜선의 구조, 임진왜란 당시 수군의 무기와 생활을 설명하는 자료가 있고, 야외에는 기념탑과 이순신 장군 사당이 이어진다. 전투 장면을 재현한 모형만 보는 것보다 지도에서 옥포만의 입구와 안쪽 포구를 먼저 찾으면, 조선 수군이 왜 이곳의 정박선을 발견하고 공격할 수 있었는지 지형이 읽힌다.
공원 아래 옥포의 오늘 풍경에는 대형 조선소와 외국인 노동자·기술자가 모인 생활권이 자리한다. 16세기의 해전과 현대 조선산업은 성격이 전혀 다르지만 둘 다 깊은 만과 항로를 기반으로 생겼다. 기념관 뒤 전망 구간에서 바다와 크레인이 한 시야에 들어오는 지점을 찾아보면 옥포가 과거의 전장에 머물지 않고 선박을 만드는 도시로 바뀐 과정이 선명하다.
03- 찾아가는 길
- 고현버스터미널에서 거제면 방면 시내버스로 약 25~35분 · 거제면사무소 정류장에서 약 300m.
- 운영시간
- 관아 일원은 주간 관람 가능 · 문화행사와 보수공사 때 내부 출입 제한 가능
- 입장료
- 무료
- 꼭 볼 포인트
- 기성관 정면의 긴 비례와 중앙 정청·좌우 익헌의 차이를 보고, 복원 관아 건물과 뒤편 산줄기까지 한 축으로 살펴본다.
- 자주 하는 실수
- 현대 고현동의 고현성과 거제면의 옛 관아를 같은 장소로 생각하기 쉽다. 목조건물 내부는 행사나 관리 상황에 따라 들어갈 수 없는 날도 있다.
거제 기성관과 옛 거제현 관아
거제면의 기성관은 조선시대 거제현 관아에서 가장 큰 건물로 남아 있다. 객사는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중앙에서 내려온 관리와 사신을 맞던 공간이었다. 오늘의 고현이 행정과 상업의 중심이 되기 전에는 거제면 일대가 섬의 읍치였다. 관아와 향교, 성곽과 시장이 모였고 바다를 지키는 수군 행정과 주민의 생활이 이 작은 분지에서 이어졌다.
기성관은 가운데 정청과 양옆 익헌이 길게 뻗은 형태다. 화려한 궁궐과 달리 넓은 마루와 반복되는 기둥, 완만한 지붕선이 건물의 위계를 만든다. 정면에서 전체 비례를 본 뒤 옆으로 돌아가 기단과 처마 깊이, 뒤편 산줄기를 함께 보면 관아가 마을의 중심축에 놓였던 방식이 드러난다. 주변에는 질청과 아전청 등 관아 건물이 복원돼 있어 객사 한 채보다 행정 공간의 구성을 읽기 좋다.
거제는 해안 명소가 강한 도시라 이곳은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그래서 바람의 언덕처럼 한눈에 알아보는 장면보다, 섬이 조선시대에 어떻게 통치되고 사람들이 어디에 모여 살았는지 천천히 보는 방문에 잘 맞는다. 인근 거제향교와 전통시장, 산방산 방향까지 연결하면 관광 해안과 다른 내륙 생활권이 보인다. 바다만 보던 여행에서 잠시 방향을 안쪽으로 돌려 주는 장소다.
- 찾아가는 길
- 장승포·지세포·구조라·와현·도장포·해금강 등 유람선 터미널에서 승선. 출항지에 따라 외도까지 약 20~50분이며 신분증이 필요하다.
- 운영시간
- 유람선 운항시간에 맞춰 입장 · 섬 체류는 보통 약 1시간 30분~2시간 · 기상 악화 시 결항
- 입장료
- 외도 입장료 성인 11,000원 · 중고생·군경 8,000원 · 어린이 5,000원 · 왕복 유람선 요금 별도
- 꼭 볼 포인트
- 비너스가든만 보지 말고 섬 가장자리 전망 구간에서 해금강과 거제 본섬, 정원이 놓인 급경사 지형을 함께 본다.
- 자주 하는 실수
- 외도 입장료만 결제하면 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귀항 유람선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출항지별 배편과 해금강 경유 여부, 귀선 시간을 예약 전에 확인한다.
외도 보타니아
외도는 거제 본섬에서 약 4km 떨어진 작은 섬이다. 1969년 이창호·최호숙 부부가 섬을 사들인 뒤 감귤과 돼지 사육을 시도했고, 강한 바람과 식수 부족을 견디며 정원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1995년 외도해상농원으로 일반에 문을 열었고, 이후 외도 보타니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국가나 기업이 처음부터 계획한 공원이 아니라 한 가족의 오랜 개간과 조경이 관광지가 된 사례다.
선착장에서 오르면 아열대 식물과 조각, 전망대가 경사면을 따라 이어진다. 비너스가든은 대칭으로 다듬은 수목과 조각상이 강한 장면을 만들고, 천국의 계단과 전망카페 쪽에서는 해금강과 내도·거제 본섬이 보인다. 정원 자체만 보면 유럽식 조경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바람이 거센 섬에 방풍림과 급수시설을 만들며 식물을 정착시킨 과정까지 함께 보면 공간의 성격이 달라진다.
외도 관람은 섬 안에서 자유롭게 끝내는 일정이 아니다. 출항한 유람선의 안내에 따라 정해진 시간 안에 선착장으로 돌아와야 하고, 배는 대개 해금강 선상관광을 함께 구성한다. 사진을 찍느라 초반 비너스가든에서 오래 머물면 후반 전망 구간이 급해진다. 반대로 식물보다 바다 풍경에 관심이 크다면 해금강을 오래 도는 항차나 출항지를 비교하는 편이 여행 만족도를 크게 바꾼다.
05- 찾아가는 길
- 도장포·해금강·장승포·지세포 등 유람선 터미널에서 선상관광. 육상 전망은 해금강마을 정류장에서 갈곶 해안 방향으로 이동한다.
- 운영시간
- 유람선사별 출항시간 운영 · 기상과 파고에 따라 동굴 진입 또는 전체 운항 취소 가능
- 입장료
- 육상 전망 무료 · 유람선은 출항지와 외도 결합 여부에 따라 요금 상이
- 꼭 볼 포인트
- 십자동굴 진입 여부만 기다리기보다 사자바위와 수직절벽, 섬 주변을 도는 배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바위 형태를 본다.
- 자주 하는 실수
- 날씨가 맑으면 반드시 동굴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기 쉽다. 육상 날씨와 해상 파고는 다르므로 출항 직전 운항 안내와 멀미 대비를 확인한다.
거제 해금강
거제 해금강은 남부면 갈곶 앞바다에 떠 있는 바위섬이다. 원래 이름은 갈도지만 두 섬이 맞닿은 듯한 모습과 금강산을 닮은 기암 때문에 ‘바다의 금강산’이라는 이름이 굳었다. 1971년 명승으로 지정됐고, 남해의 파도와 바람이 수직 절벽과 해식동굴을 만들었다. 사자바위와 미륵바위처럼 형태에 이름을 붙인 바위가 많아 유람선 안내를 따라가면 하나의 돌섬이 여러 장면으로 바뀐다.
핵심은 바깥에서 섬 모양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십자동굴로 불리는 좁은 수로에 들어가는 순간이다. 수직 절벽 사이로 들어온 빛이 물 위에 번지고, 배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바위 벽과 하늘의 폭이 달라진다. 다만 파도와 바람이 조금만 강해도 동굴 진입은 제한된다. 동굴을 보지 못했다고 해금강 전체를 못 본 것은 아니며, 바깥쪽 절벽의 층리와 식생, 주변 작은 섬이 만드는 항로도 충분히 볼 만하다.
육지에서는 해금강마을과 전망 구간에서 섬의 실루엣을 볼 수 있지만, 절벽의 높이와 동굴 구조는 배 위에서 더 분명하다. 외도와 묶인 유람선은 시간 활용이 좋고, 해금강만 집중하는 짧은 항차는 바다 풍경에 더 오래 머물 수 있다. 멀미가 걱정된다면 배 중앙의 낮은 자리를 택하고 출항 전 파고를 확인하는 것이 사진 좋은 시간대를 고르는 것만큼 중요하다.
06- 찾아가는 길
- 고현버스터미널에서 55번대 남부면 방면 버스로 약 1시간 10분~1시간 30분 · 도장포 정류장에서 입구까지 약 300m.
- 운영시간
- 상시 개방 · 야간에는 해안 계단과 능선 조명 제한
- 입장료
- 무료 · 민영 주차장과 유람선 별도
- 꼭 볼 포인트
- 풍차 가까이에서 끝내지 말고 능선 중간에서 도장포와 언덕의 곡선, 해금강 방향 바다를 한 화면으로 본다.
- 자주 하는 실수
- 풍차가 오래된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하거나 주말 한낮에도 바로 주차할 수 있다고 예상하기 쉽다. 강풍 때 절벽 가장자리와 젖은 목재 계단을 특히 조심한다.
바람의 언덕
도장포 북쪽의 낮은 구릉은 원래 주민들이 밭과 목초지로 쓰던 해안 언덕이었다. 2000년대 초 드라마와 광고 촬영지로 알려지며 ‘바람의 언덕’이라는 이름이 널리 퍼졌고, 2009년에는 언덕 위에 네덜란드풍 풍차가 세워졌다. 오래된 유적은 아니지만 남부 해안의 굽은 포구와 섬, 바람을 한눈에 보여 주는 장소라 거제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됐다.
선착장 옆 계단을 오르면 먼저 도장포의 배와 방파제가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능선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풍차 뒤로 탁 트인 바다가 열리고, 반대편에는 마을 지붕과 해금강으로 가는 유람선이 보인다. 사진은 풍차 바로 아래보다 능선 중간이나 선착장 쪽에서 언덕의 곡선과 바다를 함께 넣을 때 장소의 넓이가 잘 드러난다. 바람이 강한 날에는 모자와 가벼운 소지품을 챙기는 일이 필요하다.
언덕 자체는 크지 않아서 오래 머무는 방식보다 도장포의 유람선, 신선대와 함께 보는 구성이 자연스럽다. 푸른 잔디를 기대한다면 계절과 관리 시기에 따라 색이 달라질 수 있고, 주말 한낮에는 좁은 진입로와 주차장이 붐빈다. 이곳의 매력은 풍차 한 장보다 바다를 등지고 섰을 때 포구와 언덕, 해안도로가 가까운 거리에서 높이를 달리하는 풍경에 있다.
07- 찾아가는 길
- 도장포 정류장에서 약 650m · 도보 약 10분. 신선대 전망대 주차장에서 전망 구간까지 약 250m다.
- 운영시간
- 상시 개방 · 악천후와 강풍 때 하부 바위 접근 자제
- 입장료
- 무료
- 꼭 볼 포인트
- 상부 전망대에서 바위의 전체 윤곽과 대·소병대도를 본 뒤, 날씨가 안정적일 때만 하부 길에서 기울어진 지층을 가까이 본다.
- 자주 하는 실수
- 바람의 언덕을 보고 같은 풍경이라 생각해 건너뛰기 쉽다. 신선대의 핵심은 풍차가 아니라 지층과 해식절벽이며 젖은 바위는 운동화도 쉽게 미끄러진다.
신선대
신선대는 바람의 언덕에서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해안 바위다. 신선이 내려와 풍류를 즐겼다는 이름이 전하지만, 눈앞의 풍경은 설화보다 지질이 먼저 만든 것이다. 층층이 쌓인 퇴적암이 기울고 파도에 깎이면서 넓은 암반과 절벽이 생겼다. 잔디와 풍차가 중심인 바람의 언덕과 달리 신선대는 거친 바위와 작은 몽돌해변, 다포도와 대·소병대도가 만드는 수평선이 중심이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바위의 전체 형태가 보이지만,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지층의 결이 더 분명하다. 바위 면의 줄무늬와 색 차이를 보고,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암반 끝에서 주변 섬의 위치를 살피면 거제 남부 해안이 한 덩어리 절벽이 아니라 여러 방향의 파도에 깎여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비가 온 뒤에는 바위 표면이 매우 미끄럽고 바람이 강해진다.
바람의 언덕과 가깝지만 두 곳을 같은 포토스폿으로 생각하면 신선대가 짧게 끝난다. 해금강테마박물관 쪽 전망 구간에서 전체를 보고, 시간이 있으면 낮은 길까지 내려가 바위와 몽돌을 가까이 보는 순서가 좋다. 계단이 부담스럽거나 날씨가 좋지 않다면 전망대에서만 봐도 지형의 핵심은 충분히 읽을 수 있다.
08- 찾아가는 길
- 고현버스터미널에서 학동 방면 시내버스로 약 50~70분 · 학동해수욕장 정류장에서 해변까지 약 150m.
- 운영시간
- 해변 상시 개방 · 여름 물놀이 가능 시간과 안전통제는 해수욕장 운영 공지 적용
- 입장료
- 무료 · 성수기 주차·샤워·야영시설 별도
- 꼭 볼 포인트
- 물가 가까이에서 파도가 몽돌 사이로 빠지는 소리를 듣고, 해변 뒤 동백숲과 양쪽 곶이 만든 완만한 만의 형태를 함께 본다.
- 자주 하는 실수
- 몽돌을 가져가거나 잔잔해 보이는 날 파도 가까이 짐을 두기 쉽다. 돌 위에서는 보행이 느리고, 성수기에는 도로와 주차장이 빠르게 혼잡해진다.
학동흑진주몽돌해변
학동해변은 모래 대신 검고 둥근 몽돌이 약 1.2km 이어지는 해안이다. 파도에 오랜 시간 구른 돌이 크기와 모양을 달리하며 쌓였고, 물이 빠질 때 돌 사이로 스며드는 파도가 독특한 소리를 만든다. 이름의 ‘흑진주’는 젖은 몽돌이 햇빛을 받아 검게 빛나는 모습에서 왔다. 여름 해수욕장으로 알려졌지만 파도와 자갈 소리는 사람이 적은 봄·가을에 더 또렷하다.
해변 뒤편에는 천연기념물인 학동 동백나무 숲과 팔색조 번식지가 이어진다. 동백은 바닷바람을 막아 주는 방풍림 역할을 했고, 숲과 해변이 가까이 붙은 환경은 다양한 새가 머무는 조건을 만들었다. 몽돌만 내려다보다 돌아가기보다 해변 중앙에서 양쪽 곶의 곡선을 보고, 숲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해안 마을이 바람과 파도를 견딘 방식까지 보인다.
몽돌은 기념품이 아니다. 작은 돌 하나라도 가져가면 해변의 지형과 생태를 훼손하며 반출 금지 안내도 곳곳에 있다. 맨발 걷기는 발바닥에 부담이 크고 파도가 센 날에는 돌이 움직여 균형을 잃기 쉽다. 물놀이 목적이 아니어도 해 질 무렵 파도 소리를 듣거나, 노자산과 남부 해안 사이에서 잠시 머물기 좋은 장소다.
09- 찾아가는 길
- 부산 강서구 가덕도에서 차량으로 가덕해저터널·거가대교를 지나 장목면 진입. 고현버스터미널에서는 장목 방면 버스로 약 35~50분.
- 운영시간
- 도로 24시간 통행 · 강풍·사고·공사 때 부분 통제 가능 · 전망 장소별 운영시간 상이
- 입장료
- 전망 무료 · 거가대교 차량 통행료는 차종별 공식 요금 적용
- 꼭 볼 포인트
- 주탑만 크게 보는 것보다 장목 해안에서 큰저도와 수로, 사장교의 위치를 함께 보고 해저터널과 교량이 한 노선을 이루는 구조를 이해한다.
- 자주 하는 실수
- 교량 위 갓길이나 비상주차대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주정차는 금지되며 전망은 반드시 정식 주차·전망 공간에서 해결한다.
거가대교와 저도 전망
거가대교는 거제 장목과 부산 가덕도를 잇는 약 8.2km의 해상도로다. 사장교 두 곳과 해저 침매터널을 연결해 2010년 개통했고, 거제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을 크게 줄였다. 바다 위 교량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덕도 앞 바닷속에 콘크리트 함체를 가라앉혀 만든 거가대교 해저터널이 함께 구성된 점이 특징이다. 섬의 남쪽 통영 방향에 의존하던 육상 교통이 북쪽 부산으로도 열린 전환점이었다.
거제 쪽 장목에서는 큰저도와 중죽도 사이로 이어지는 사장교의 주탑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다. 도로 위에서는 정차할 수 없으므로 전망은 장목 해안이나 휴게 공간, 유람선에서 따로 보는 편이 안전하다. 다리의 크기만 보지 않고 아래의 좁은 수로와 주변 섬을 함께 보면 왜 교량과 터널을 섞어 설계했는지 이해하기 쉽다. 해군 항로와 선박 통행을 유지하면서 부산·거제의 육상 교통을 연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거가대교는 관광지라기보다 거제의 생활권을 바꾼 기반시설이다. 부산에서 당일치기로 들어오는 여행이 쉬워졌고, 장목의 작은 어촌과 매미성·저도 주변 관광도 함께 늘었다. 북쪽에서 거제로 들어온다면 다리를 단순한 이동 구간으로 지나치기보다 장목 해안에서 한 번 돌아보면, 바다 때문에 멀었던 섬이 다시 바다 위 구조물 덕분에 가까워진 역사가 보인다.
더 확인하고 싶다면
운영 시간과 요금은 바뀔 수 있습니다. 아래 공식 자료와 신뢰할 수 있는 참고문헌에서 최신 내용을 다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