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국수 한 그릇에서 하노이와 사이공이 갈린다

하노이의 아침 퍼에는 맑은 국물과 파, 얇은 쇠고기가 단정하게 놓인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접시 하나가 더 따라온다. 타이바질과 숙주, 라임, 칠리, 해선장이 그릇 옆에서 기다린다. 같은 이름의 국수가 1954년 이후 서로 다른 도시에서 다른 향을 키웠다.

얇은 쇠고기와 허브를 올린 베트남 퍼
사진 Peachyeung316 · CC BY-SA 4.0

퍼는 19세기 말~20세기 초 북부 베트남에서 쇠고기 소비, 남딘 국수 기술, 하노이 행상 문화가 만나 자란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pot-au-feu 어원설과 중국어 어원설, 북부와 남부의 국물·고명 차이, 뼈와 탄 양파가 맑은 향을 만드는 과정을 살핀다.

새벽 인도에 먼저 오르는 김

하노이에서는 아침부터 퍼 솥이 끓는다. 주문이 들어오면 데친 쌀면을 그릇에 담고 얇은 고기와 파를 올린 뒤 펄펄 끓는 국물을 붓는다. 생고기의 가장자리가 즉시 오그라들며 색이 바뀐다.

국물에서는 구운 생강과 양파의 달고 매운 향, 팔각과 계피의 따뜻한 냄새가 난다. 쌀면은 국물을 흡수하기보다 표면에 얇게 묻혀 매끄럽게 넘어간다.

첫 숟가락은 국물만 맛보고, 다음에는 면과 고기를 함께 든다. 숙주와 허브가 적은 북부 그릇에서는 국물의 소금기와 향신료 농도가 처음부터 끝까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하노이 거리에서 쌀국수를 파는 노점
하노이의 쌀국수 노점은 국물 솥과 면, 고명을 좁은 자리에 모아 둔다. 손님이 앉으면 면을 데쳐 그릇에 담고 뜨거운 국물을 부어, 향신료 향이 가시기 전에 바로 내놓는다.사진 Schellack · CC BY 3.0

북부에서 쇠고기 국수가 생긴 배경

퍼는 대체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북부 베트남에서 형성된 음식으로 설명된다. 남딘은 쌀국수 제조와 행상인의 고향으로, 하노이는 음식이 크게 퍼진 도시로 자주 언급된다.

프랑스 식민 통치 아래 유럽인 쇠고기 소비가 늘며 뼈와 부산물이 시장에 더 많이 나왔다는 설명이 있다. 기존 물소 고기 국수와 중국계 국수 장사의 기술이 쇠고기 뼈 국물과 만나 변했다.

한 사람이 최초로 끓였다는 기록은 없다. 남딘의 이동 상인, 하노이 시장, 프랑스 도축과 중국계 조리 문화가 겹친 도시 음식에 가깝다.

퍼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홍강 삼각주와 하노이 주변에서 모습을 갖춘 것으로 설명된다. 프랑스 식민지기의 쇠고기 소비 증가, 남딘 지역의 쌀면 기술, 중국계 국물 문화가 겹쳤지만 한 요소만으로 기원을 확정하기는 어렵다.

당시 베트남에서 소는 농경 노동의 가치가 커 고기를 일상적으로 많이 먹지 않았다. 도시 도축장에서 나온 뼈와 자투리 부위를 오래 끓여 국물로 쓰면 적은 고기로도 여러 그릇을 만들 수 있었다. 퍼의 맑은 육수에는 이런 도시 경제가 배어 있다.

남딘과 하노이가 함께 고향으로 불린다

남딘 사람들은 반 퍼 제조와 이동 행상 기술을 고향의 기여로 기억한다. 농촌에서 만든 쌀면과 국수 장인이 하노이로 이동해 시장과 거리에서 장사했다는 설명이다. 하노이는 다양한 손님과 재료, 식민 도시의 수요 속에서 퍼의 형태를 널리 알렸다.

그래서 남딘을 지리적 요람, 하노이를 문화적 고향이라고 나누어 부르기도 한다. 어느 도시가 원조인지 겨루기보다 면을 만든 지역과 한 그릇을 대중화한 도시가 서로 다른 역할을 했다고 보면 두 기억이 함께 남는다.

어깨에 멘 부엌

1930년대 하노이 거리에는 간 퍼를 멘 행상이 흔했다. 대나무 장대 양쪽에 국물 솥과 면·그릇·연료를 나눠 달아 이동했다. 한 사람이 작은 식당 전체를 어깨에 멘 셈이다.

국물은 계속 뜨거워야 했고 주문 즉시 면을 데쳐야 했다. 좁은 길과 아침 노동자의 시간에 맞는 형태였다. 손님은 낮은 의자에 앉거나 서서 빠르게 그릇을 비웠다.

이동식 부엌에서는 고명을 많이 펼치기 어렵다. 국물과 면, 고기, 파에 집중한 북부식 단정한 구성이 거리 판매와도 맞았다.

두부와 채소를 넣은 퍼 차이
남부식 퍼에는 숙주와 여러 허브, 라임, 칠리가 넉넉히 곁들여진다. 생재료가 들어갈수록 국물 온도와 향의 방향이 달라진다.사진 Andy Li · CC0

1954년 뒤 국물이 남쪽으로 갔다

1954년 베트남이 분단된 뒤 북부 주민 다수가 남부로 이동했고 퍼 장인과 식습관도 함께 내려갔다. 사이공의 풍부한 채소와 단맛을 선호하는 지역 입맛 속에서 한 그릇이 달라졌다.

남부 국물은 상대적으로 달고 향신료 향이 강한 경우가 많다. 별도의 접시에 숙주, 타이바질, 고수류, 톱풀, 라임, 칠리를 넉넉히 낸다. 해선장과 칠리소스도 식탁에 놓인다.

생허브를 넣으면 국물의 뜨거운 쇠고기 향 위로 아니스와 후추 같은 풋향이 올라온다. 숙주는 수분을 내고 온도를 낮추며 아삭한 식감을 더한다. 같은 퍼가 식탁에서 완성되는 방식이 달라진다.

제네바 협정 뒤 북부 주민이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퍼 가게도 사이공에 늘었다. 남부의 넉넉한 채소와 단맛 선호, 중국계 소스 문화가 붙어 숙주·타이바질·고수, 라임과 칠리, 해선장이 따로 나오는 식탁이 자리 잡았다.

하노이식 퍼는 파와 고수, 얇은 고기처럼 고명이 비교적 절제되고 국물의 소금기와 구운 생강 향을 바로 드러낸다. 사이공식은 생허브를 넣을 때마다 국물 온도가 낮아지고 향이 초록색으로 바뀐다. 같은 솥의 맛을 끝까지 유지하지 않는다.

맑은 뼈 국물을 끓이는 법

쇠뼈를 데쳐 핏물과 단백질 찌꺼기를 씻은 뒤 새 물에 오래 끓인다. 처음 생기는 거품과 지방을 걷어야 탁한 맛이 줄어든다. 세게 계속 끓이면 지방이 국물에 유화돼 뿌옇게 된다.

양파와 생강은 겉을 검게 구워 단맛과 연기 향을 낸다. 탄 껍질은 털어내고 국물에 넣는다. 팔각, 계피, 정향, 검은 카다멈, 고수씨는 볶아 향을 깨운 뒤 천 주머니에 담기도 한다.

향신료를 너무 오래 두면 쓴맛과 약재 냄새가 뼈 국물을 덮는다. 고기는 익은 부위부터 건져 식혀 얇게 썬다. 국물만 오래 남아 맛을 농축한다.

쇠뼈는 한 번 데쳐 핏물과 불순물을 씻고 새 물에서 약하게 끓인다. 센 불로 계속 흔들면 지방과 단백질이 국물에 유화되어 탁해진다. 표면 거품을 걷고 구운 양파와 생강을 넣으면 맑은 갈색과 단맛이 생긴다.

팔각과 계피, 정향·초과 같은 향신료는 마른 팬에 데워 향을 깨운 뒤 주머니에 넣기도 한다. 오래 끓이면 쓴맛과 약재 향이 앞서므로 중간에 건진다. 첫 김에는 구운 양파의 단 향이, 삼킨 뒤에는 느억맘과 쇠뼈의 감칠맛이 길게 남는다.

느억맘이 소금기보다 깊은 맛을 낸다

퍼 국물의 간에는 소금과 함께 느억맘 피시소스를 쓴다. 멸치류를 소금에 발효한 맑은 액체는 직접 맡으면 향이 강하지만 뜨거운 쇠고기 국물에 적은 양이 들어가면 짠맛 뒤의 감칠맛을 길게 만든다.

너무 일찍 많이 넣고 오래 끓이면 향이 거칠거나 국물이 어두워질 수 있어 마지막 간에 더하는 주방도 있다. 설탕이나 빙당은 양파와 뼈의 단맛을 보완하지만 남부식에서 비중이 더 큰 경우가 많다. 맑은 국물의 투명함은 무미가 아니라 균형을 숨긴다.

진한 쇠고기 육수의 퍼 보
채식 퍼는 고기뼈 대신 버섯과 구운 채소, 향신료로 국물의 깊이를 만든다. 면의 형태는 같아도 감칠맛의 근원이 바뀐다.사진 Andy Li · CC0

삶은 면은 곧바로 국물에 담는다

퍼 면 반 퍼는 쌀을 불려 갈아 만든 반죽을 얇게 쪄 잘라 만든다. 생면은 부드럽고 향이 짧으며 마른 면은 보관이 쉽고 씹힘이 조금 더 단단하다.

면을 미리 국물에 오래 담가 두면 전분이 풀리고 서로 붙는다. 주문 직전에 뜨거운 물에 짧게 데쳐 표면만 부드럽게 한 뒤 그릇에 넣는다.

국물이 부어지면 면은 다시 열을 받는다. 처음에는 매끄럽고 중심이 살짝 탄력 있지만 먹는 동안 점점 부드러워진다. 퍼 한 그릇을 오래 두면 국물 맛보다 면의 상태가 먼저 바뀐다.

고기 부위가 국물의 식감을 바꾼다

퍼 보에는 생등심 따이, 익힌 양지 찐, 차돌과 힘줄, 우설, 곱창, 미트볼 등 여러 선택이 있다. 같은 국물에서도 지방과 씹힘이 전혀 달라진다.

얇은 생고기는 뜨거운 국물에 익으며 부드럽고 쇠고기 향이 맑다. 양지는 오래 삶아 결이 풀리고 국물 맛을 많이 머금는다. 힘줄은 젤라틴이 투명하고 쫀득해 숟가락에서 미끄러진다.

닭고기 퍼 가는 1930년대 후반 쇠고기 공급 제한 시기에 등장했다는 설명이 있다. 닭 국물은 지방이 가볍고 생강과 파 향이 더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닭 퍼에 남은 전시기의 흔적

1939년 무렵 하노이에서 쇠고기 판매가 제한된 날에 닭고기 퍼가 등장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처음에는 쇠고기가 아닌 퍼를 낯설게 여겼다는 기록과 회고가 있지만 퍼 가는 곧 별도 인기 메뉴가 됐다.

닭뼈 국물은 쇠뼈보다 색이 맑고 지방 향이 가벼워 생강, 파, 라임잎 같은 향이 더 드러난다. 찢은 닭살과 껍질, 어린 달걀을 고명으로 올리기도 한다. 같은 쌀면이 육수 하나로 전혀 다른 아침 냄새를 얻었다.

얇은 생고기는 그릇에서 익는다

퍼 따이에 올리는 쇠고기는 종이처럼 얇게 썰어 생에 가까운 상태로 면 위에 펼친다. 펄펄 끓는 국물을 부으면 가장자리부터 회갈색으로 변하고 가운데에는 잠시 붉은빛이 남는다. 냄비에서 오래 끓인 양지와 달리 결이 부드럽고, 국물을 머금은 표면이 매끈하다.

국물의 온도가 낮거나 고기를 두껍게 썰면 익는 속도가 달라진다. 그래서 면과 그릇을 미리 덥히고 국물은 주문 직전까지 뜨겁게 유지한다. 첫 숟갈에는 별 모양 팔각과 구운 양파 향이 올라오고, 얇은 쇠고기를 씹은 뒤에는 맑은 국물의 단맛이 더 뚜렷해진다.

마늘과 고추를 곁들인 퍼
국물 표면의 작은 기름방울은 향신료와 쇠고기 향을 코로 운반한다. 지나치게 많으면 입안을 덮고 너무 적으면 향이 짧다.사진 Andy Li · CC0

허브를 넣으면 국물 향이 달라진다

라임을 짜고 해선장과 칠리소스를 풀면 국물의 원래 간과 향은 크게 바뀐다. 산미는 지방을 끊고 칠리는 열감을, 해선장은 단맛과 발효 콩 맛을 더한다.

소스를 작은 접시에 따로 덜어 고기를 찍는 사람도 있다. 국물은 맑게 두면서 각 고기 조각에만 진한 맛을 붙일 수 있다. 북부식 식당에서는 해선장이 아예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

퍼의 차이는 어느 쪽이 더 정통인지보다 그릇 옆을 보면 선명하다. 하노이의 간결한 고명과 사이공의 허브 접시는 두 도시가 같은 국수를 어떻게 자기 식탁으로 바꿨는지 보여준다.

SOURCES

더 확인하고 싶다면

퍼의 어원은 프랑스어와 광둥어 설이 경쟁하므로 확정하지 않았다. 북부 기원과 남부 변형은 베트남 관광청의 음식사 자료를 중심으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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