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땀은 달지 않은 파파야로 만든다

잘 익은 주황색 과일 대신 단단한 풋파파야를 가늘게 썬다. 마늘과 고추를 절구에서 깨뜨리고 라임, 생선소스, 야자당을 섞으면 아삭하고 맵고 새콤한 한 접시가 나온다. 땅콩을 넣은 솜땀 타이부터 발효 생선 향이 짙은 이산식까지 절구 안에서 달라지는 맛을 따라갔다.

풋파파야 채와 토마토, 땅콩을 담은 태국 솜땀
사진 Alexander Klink · CC BY 4.0

태국 솜땀은 익지 않은 풋파파야를 채 썰어 절구에서 가볍게 두드려 만든다. 라임·생선소스·고추·야자당의 맛, 솜땀 타이와 플라라를 넣은 이산식의 차이, 찰밥과 닭구이를 곁들이는 식탁까지 구체적인 향과 식감으로 담았다.

달지 않은 파파야를 쓴다

솜땀을 처음 본 사람은 파파야라는 이름에서 달콤한 과일을 떠올리기 쉽다. 접시 위에 놓인 가느다란 채는 잘 익은 주황색 과육과 전혀 닮지 않았다.

재료는 익기 전의 풋파파야다. 겉은 짙은 초록색이고 속은 희거나 연한 연둣빛이다. 씨가 단단해지기 전이라 가운데를 긁어 내기도 쉽다.

잘 익은 파파야는 숟가락으로 뜰 만큼 부드럽고 향이 짙다. 풋파파야는 향이 옅고 단맛도 거의 없다. 생무처럼 단단하지만 매운맛은 훨씬 약하다.

껍질을 벗기면 맑고 끈적한 즙이 묻어난다. 물에 씻은 뒤 칼을 대면 사각거리는 소리가 나고, 얇은 채는 손으로 구부려도 쉽게 으깨지지 않는다.

이 담백한 채가 솜땀의 바탕이다. 자체 향이 강하지 않아 라임과 생선소스, 고추, 마늘이 스며들어도 풋파파야의 시원한 식감은 남는다.

한입 씹으면 먼저 아삭하고, 몇 번 더 씹을수록 새콤하고 짭짤한 양념이 나온다. 오이나 양배추보다 단단해 양념 속에 오래 있어도 금세 물러지지 않는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의 파파야 자료에도 녹색 미숙과를 채 썰어 샐러드에 쓴다는 설명이 있다. 익은 과일과 미숙한 채소를 같은 나무에서 얻는 셈이다.

태국 시장에서는 통째인 풋파파야뿐 아니라 껍질을 벗기고 채 썬 상태로도 판다. 얇고 긴 채가 봉지 안에 한 끼 분량으로 나뉘어 있다.

채의 굵기는 가게마다 다르다. 아주 가늘면 양념이 빨리 배고 부드럽게 휘어진다. 성냥개비처럼 굵으면 씹는 소리가 크고 풋파파야의 수분이 더 오래 남는다.

그릇에 담긴 모습은 가벼운 샐러드 같지만 맛은 얌전하지 않다. 고추의 매운맛, 라임의 신맛, 생선소스의 짠맛이 첫입부터 함께 들어온다.

솜땀이라는 이름도 조리 동작을 품고 있다. ‘솜’은 시고 매운 재료를 섞는다는 뜻으로 풀이되고, ‘땀’은 절구에 넣고 찧는 동작을 가리킨다.

풋파파야를 얇게 써는 일만으로는 이 음식이 끝나지 않는다. 다음 장면에는 칼보다 크고 깊은 절구가 놓인다.

나무에 매달린 길쭉하고 푸른 미숙 파파야
익기 전의 파파야는 껍질과 과육이 단단하고 단맛이 거의 없다. 이 풋과육을 가늘게 썬 것이 솜땀의 아삭한 바탕이 된다.사진 Aathavan jaffna · CC BY-SA 3.0

칼보다 절구가 먼저 움직인다

솜땀 노점에서는 주문이 들어오면 긴 절굿공이가 움직인다. 먼저 마늘과 생고추를 넣고 몇 차례 찧으면 매운 향이 코끝으로 바로 올라온다.

한국의 마늘 빻듯 재료를 곱게 만들지는 않는다. 마늘은 납작하게 깨지고 고추 껍질이 터질 정도에서 손을 멈춘다. 조각이 남아 있어야 한입마다 매운맛이 조금씩 다르다.

그다음 줄콩과 토마토가 들어간다. 줄콩은 짧게 잘라 넣어 표면에 작은 금이 가도록 두드리고, 토마토는 과육이 뭉개지지 않게 숟가락으로 받쳐 뒤집는다.

절굿공이와 긴 숟가락은 한 쌍처럼 움직인다. 한 손으로 가볍게 찧고 다른 손으로 바닥의 재료를 끌어 올려 소스와 계속 섞는다.

힘을 너무 세게 주면 풋파파야가 끊어지고 토마토가 죽처럼 풀린다. 너무 약하면 마늘과 고추 향만 소스에 남고 채 안쪽에는 간이 닿지 않는다.

적당히 두드린 채는 표면이 살짝 거칠어진다. 손으로 집어 보면 여전히 단단하지만 매끈했던 겉면에 양념이 붙어 있다.

이 차이는 먹을 때 분명하다. 그냥 버무린 채는 소스가 겉돌기 쉽고, 절구에서 나온 채는 씹을 때 안쪽에서 라임즙과 생선소스가 함께 배어 나온다.

절구 재질도 하나가 아니다. 나무 절구는 깊고 가벼워 풋파파야를 섞기 좋고, 돌절구는 무거워 마늘과 고추를 곱게 찧는 데 쓰인다.

길거리 솜땀 가게에서 흔히 보이는 것은 키가 큰 나무 절구다. 좁은 입구 덕분에 채가 밖으로 튀는 것을 줄이고, 길쭉한 숟가락을 안쪽 깊이 넣을 수 있다.

채를 한꺼번에 가득 넣지 않고 나눠 넣는 가게도 있다. 아래쪽 양념을 먼저 만든 뒤 풋파파야를 보태야 소스가 바닥에만 고이지 않는다.

완성된 솜땀에는 모양이 다른 조각들이 섞인다. 길게 살아 있는 파파야 채, 살짝 찌그러진 토마토, 잘린 줄콩, 납작해진 땅콩이 한 접시에 보인다.

기계로 곱게 갈아 만든 소스와 달리 절구 안에서는 재료가 완전히 하나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입에는 라임 향이 세고, 다음 입에는 마늘이나 고추가 더 선명하다.

시장 진열대에 가늘게 채 썰어 봉지에 나눈 풋파파야
시장에는 풋파파야를 가늘게 채 썰어 한 끼 분량으로 나눈 모습도 보인다. 채가 가늘수록 절구에서 양념이 빠르게 밴다.사진 Dewita Soeharjono · CC BY-SA 2.0

신맛과 짠맛은 절구 안에서 만난다

솜땀의 양념은 따로 끓이지 않는다. 라임즙과 생선소스, 야자당이 절구 바닥에서 섞이고 토마토에서 나온 즙이 농도를 묽게 만든다.

라임을 짜 넣으면 향이 먼저 퍼진다. 레몬보다 껍질 향이 짙고 신맛이 날카로워, 풋파파야의 담백함을 단번에 바꾼다.

생선소스는 짠맛만 더하지 않는다. 작은 생선을 소금에 발효해 만든 액체라 멸치젓 국물과 비슷한 구수한 향이 있고, 마늘과 고추의 날카로운 맛을 묶어 준다.

야자당은 흰 설탕보다 향이 짙고 단맛이 천천히 느껴진다. 덩어리를 숟가락에 붙여 넣으면 라임즙에 녹으면서 소스에 옅은 갈색이 돈다.

단맛이 많으면 매운맛이 한결 둥글게 느껴지고, 라임이 많으면 침샘을 자극하는 신맛이 오래 남는다. 생선소스가 늘면 짠맛과 발효 향이 앞선다.

태국 요리 자료에 적힌 기본 재료는 단순하다. 풋파파야, 마늘, 고추, 토마토, 줄콩, 땅콩, 마른 새우에 생선소스와 야자당, 라임을 더한다.

하지만 같은 재료표로도 맛은 달라진다. 고추를 먼저 세게 찧으면 소스 전체가 맵고, 마지막에 가볍게 깨면 고추 조각을 씹을 때 매운맛이 갑자기 튄다.

토마토도 양념의 일부다. 붉은 조각이 장식처럼 보이지만 절구에서 나온 과즙은 라임의 날카로운 신맛을 누그러뜨리고 소스를 촉촉하게 만든다.

마른 새우를 넣으면 씹는 사이에 짠맛이 한 번 더 나온다. 작은 새우는 단단하고 쫄깃해 아삭한 파파야와 다른 저항을 남긴다.

땅콩은 고소함과 기름기를 보탠다. 잘게 깨진 가루는 소스에 붙고, 큰 조각은 씹을 때 바삭하게 부서져 매운맛 뒤에 고소한 맛이 이어진다.

접시 바닥에는 묽은 양념이 조금 고인다. 숟가락으로 채를 들어 올리면 맑은 갈색 소스가 가늘게 떨어지고, 마지막 채 몇 가닥에는 맛이 가장 진하게 배어 있다.

솜땀은 단맛·신맛·짠맛·매운맛을 똑같은 크기로 맞춘 음식이 아니다. 주문한 가게와 먹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어느 맛이 먼저 오는지가 달라진다.

길거리 노점에서 긴 절구로 솜땀 재료를 찧는 상인
길거리 상인은 긴 나무 절구와 숟가락을 함께 움직인다. 마늘과 고추는 깨뜨리고, 풋파파야는 표면에 양념이 붙을 만큼 가볍게 두드린다.사진 Xufanc · CC BY-SA 3.0

솜땀 타이에는 땅콩이 들어간다

관광객이 태국 식당에서 자주 만나는 것은 솜땀 타이다. 밝은 풋파파야 채 사이에 붉은 토마토와 초록 줄콩, 베이지색 땅콩이 섞여 있어 색이 선명하다.

솜땀 타이는 생선소스와 라임, 야자당을 쓰고 마른 새우와 볶은 땅콩을 올리는 조합이 흔하다. 발효 생선 향이 강한 이산식보다 단맛이 조금 더 느껴질 때가 많다.

첫입에는 라임의 새콤함이 닿고 곧 고추의 매운맛이 올라온다. 씹는 동안 땅콩이 부서지면 고소한 맛이 더해지고, 마른 새우의 짠맛이 뒤에 남는다.

풋파파야 채는 소스를 머금어도 가운데가 단단하다. 포크로 한 번에 많이 집으면 아삭한 소리가 크고, 가는 채 몇 줄만 먹으면 양념 맛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태국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 가지 조리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게에 따라 당근을 섞고, 방울토마토나 큰 토마토를 쓰며, 땅콩을 마지막에 올리기도 하고 절구에서 함께 찧기도 한다.

해산물을 더한 솜땀도 있다. 삶은 새우나 게를 넣으면 접시가 한층 묵직해지고, 해산물에서 나온 짠맛이 소스에 보태진다.

솜땀 뿌에는 작은 게가 들어간다. 껍데기 조각과 집게가 풋파파야 사이에 보여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꽤 낯선 모습이다.

게는 살을 많이 발라 먹는 재료라기보다 짠맛과 바다 향을 더하는 역할이 크다. 껍데기 주변의 양념은 진하고, 토마토와 줄콩에도 게의 향이 묻는다.

태국 관광청은 소금에 절인 게와 발효 생선소스를 넣은 솜땀 뿌 플라라를 지역 음식으로 소개한다. 한 접시 안에서 산뜻한 라임 향과 깊은 발효 향이 부딪힌다.

파인애플이나 쌀국수 면을 쓰는 변형도 있다. 풋파파야만이 솜땀을 규정하는 재료라기보다 절구에서 새콤하고 맵게 버무리는 방식이 여러 재료로 퍼진 것이다.

그래도 솜땀 타이의 인상은 분명하다. 밝고 아삭하며, 땅콩과 마른 새우 덕분에 한입 안에서 부드럽게 끝나지 않는다.

작은 게와 토마토, 줄콩을 넣어 버무린 솜땀 뿌
솜땀 뿌에는 작은 게가 들어간다. 껍데기 주변의 짠맛과 향이 라임, 고추, 풋파파야 채에 묻는다.사진 Takeaway · CC BY-SA 3.0

이산의 그릇에는 플라라가 있다

태국 북동부 이산에서 솜땀을 말할 때 플라라를 빼놓기 어렵다. 민물고기를 소금과 쌀겨에 넣어 발효한 재료로, 병이나 항아리 안의 액체는 탁한 갈색을 띤다.

뚜껑을 열면 생선소스보다 훨씬 진한 냄새가 난다. 오래 삭힌 젓갈과 된장 사이를 떠올리게 하는 발효 향이 있고, 국물 한 숟가락만 들어가도 접시 전체의 냄새가 달라진다.

플라라는 이산의 여러 음식에서 간을 맞춘다. 솜땀에서는 라임의 신맛 뒤로 구수하고 짠 맛을 길게 남긴다.

태국 재단 자료는 이산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플라라 음식도 널리 퍼졌다고 설명한다. 지금은 방콕의 길거리 솜땀 가게에서도 플라라를 넣을지 묻는 일이 흔하다.

이산과 메콩강 건너 라오스는 음식 재료를 많이 공유한다. 라오스의 풋파파야 샐러드 땀막훙은 플라라와 가까운 발효 생선소스를 진하게 쓰고, 땅콩이나 야자당을 넣지 않는 경우가 많다.

태국의 솜땀 타이가 달고 새콤한 쪽이라면 땀막훙과 솜땀 플라라는 짠맛과 발효 향이 먼저 느껴질 수 있다. 생가지 조각이 들어가면 풋파파야와 또 다른 씁쓸한 아삭함이 생긴다.

플라라를 넣은 솜땀은 색도 짙어진다. 맑은 라임 소스 대신 갈색 양념이 채 사이에 묻고, 게를 함께 넣으면 껍데기 주변에 진한 국물이 고인다.

향이 강하다고 매운맛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생고추가 혀를 따갑게 하고 플라라의 짠맛이 오래 남아, 찰밥을 한입 곁들이게 된다.

발효 생선은 지역마다 원료와 숙성 방식이 다르다. 어떤 플라라는 체에 거르거나 끓여 쓰고, 어떤 것은 생선 조각이 보이는 상태로 양념에 넣는다.

태국 관광청이 소개하는 솜땀 뿌 플라라에는 끓인 발효 생선소스와 논게 또는 소금에 절인 게가 들어간다. 위생과 조리 방식은 가게마다 확인할 부분이다.

플라라 향을 처음 맡으면 강하게 느껴질 수 있다. 풋파파야와 함께 씹으면 냄새만 남지 않고 짠맛과 감칠맛이 라임의 산미를 받쳐 준다.

솜땀이라는 같은 이름 아래에서도 접시의 중심이 달라진다. 땅콩과 마른 새우가 보이는 밝은 솜땀 타이 옆에 놓으면 이산식의 짙은 색과 발효 향이 더 뚜렷하다.

시장 진열대에 놓인 갈색 플라라 발효 생선 소스
플라라는 민물고기를 소금과 쌀겨에 발효한 이산의 조미료다. 생선소스보다 향이 강하고 솜땀 국물의 색과 짠맛을 짙게 만든다.사진 Xufanc · CC BY-SA 3.0

찰밥과 닭구이가 함께 온다

솜땀은 한 접시만 놓고 먹기도 하지만 이산식 밥상에서는 카오니아오와 까이양이 자주 곁에 온다. 찰밥, 구운 닭, 풋파파야 샐러드가 한 상을 이룬다.

카오니아오는 찹쌀을 쪄 만든 밥이다. 작은 대나무 통이나 바구니에 담겨 나오며, 손으로 조금 떼어 뭉치면 쉽게 한입 크기가 된다.

찰밥은 향이 강하지 않고 쫀득하다. 매운 솜땀을 먹은 뒤 씹으면 혀에 남은 고추 맛이 잠시 누그러지고, 플라라나 생선소스의 짠맛도 덜 세게 느껴진다.

까이양은 양념한 닭을 숯불이나 그릴에서 굽는다. 껍질에는 갈색 불 자국이 생기고 가장자리는 바삭하며, 속살은 육즙이 남아 부드럽다.

구운 닭의 기름진 맛 다음에 솜땀을 먹으면 라임의 신맛이 입안을 산뜻하게 바꾼다. 풋파파야의 차갑고 아삭한 식감도 뜨거운 닭고기와 대비된다.

한 상에는 양배추나 오이, 줄콩 같은 생채소가 더 놓이기도 한다. 고추가 너무 매울 때 생채소를 씹으면 물기가 나오고 입안의 열기가 잠시 줄어든다.

라브를 곁들이면 다진 고기와 볶은 쌀가루 향이 더해진다. 솜땀의 묽은 소스, 찰밥의 쫀득함, 라브의 잘게 씹히는 식감이 번갈아 온다.

태국 북동부는 건조한 고원 지대가 많고 찹쌀을 주식으로 먹는 문화가 발달했다. 메콩강을 사이에 둔 라오스 음식과 재료와 먹는 방식이 닮은 부분도 많다.

솜땀의 매운맛은 밥상 안에서 조절된다. 파파야 채만 계속 먹을 때보다 찰밥과 닭고기를 사이에 두면 신맛과 짠맛, 구운 향이 차례로 바뀐다.

닭 껍질 조각에 솜땀 소스를 살짝 묻히면 기름진 맛에 라임과 고추가 붙는다. 반대로 찰밥을 소스에 오래 담그면 생선소스의 짠맛을 빠르게 빨아들인다.

세 음식은 접시도 다르다. 솜땀은 국물이 흐르지 않는 오목한 접시, 닭은 넓은 접시나 도마, 찰밥은 뚜껑 있는 바구니에 놓인다.

여럿이 둘러앉으면 솜땀은 가운데 놓인다. 각자 찰밥을 떼고 닭고기를 집은 뒤, 아삭한 파파야 채를 조금씩 가져간다.

구운 닭고기와 솜땀, 찹쌀밥을 함께 차린 태국식 한 상
이산식 한 상에는 솜땀과 까이양, 카오니아오가 함께 놓인다. 차갑고 매운 파파야 채 사이에 뜨거운 닭고기와 쫀득한 찰밥을 번갈아 먹는다.사진 Takeaway · CC BY-SA 3.0

주문할 때 맛이 달라진다

태국의 솜땀 노점 앞에는 절구와 풋파파야 채, 라임, 토마토, 줄콩이 손 닿는 거리에 놓인다. 주문이 들어온 뒤 재료가 절구로 옮겨 가기 때문에 맛을 바꾸기 쉽다.

매운 정도를 말하면 상인은 넣을 고추 수를 조절한다. 한두 개만 들어가도 생고추를 직접 찧어 매운맛이 선명하고, 여러 개가 터지면 소스까지 붉어진다.

‘마이 펫’은 맵지 않게, ‘펫 닛 너이’는 조금 맵게 해 달라는 말로 쓰인다. 다만 가게가 생각하는 ‘조금’과 먹는 사람이 느끼는 정도는 다를 수 있다.

단맛을 줄이면 라임의 산미와 생선소스의 짠맛이 더 또렷해진다. 야자당을 늘리면 소스가 부드러워지고 고추의 자극이 조금 늦게 온다.

플라라를 넣을지도 선택이 된다. 넣지 않은 솜땀 타이는 향이 밝고 땅콩의 고소함이 잘 보이며, 넣은 접시는 발효 향과 감칠맛이 길게 남는다.

주문마다 새로 찧는 이유는 맛 조절뿐만이 아니다. 미리 버무려 두면 풋파파야에서 물이 나와 소스가 묽어지고 아삭함이 조금씩 줄어든다.

갓 만든 솜땀은 채가 뻣뻣하게 살아 있다. 접시를 들고 이동하는 동안 소스가 배면 채가 조금 부드러워지지만 가운데의 단단함은 남는다.

포장할 때는 소스가 비닐봉지 아래에 모인다. 집에 도착해 봉지를 뒤집거나 그릇에 붓는 순간 바닥의 진한 양념이 다시 채에 묻는다.

얼음을 넣는 음식은 아니지만 재료는 대개 서늘하게 보관한다. 뜨거운 국물 요리 옆에서 먹어도 솜땀 자체는 차갑거나 실온에 가까워 온도 차가 난다.

노점마다 절구 소리도 다르다. 단단한 재료를 찧을 때는 둔탁하고, 풋파파야를 섞을 때는 숟가락이 나무 벽을 긁는 가벼운 소리가 섞인다.

완성까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마늘과 고추를 찧고 양념을 풀고 채를 섞는 동안 다음 주문의 풋파파야가 옆에 준비된다.

메뉴 사진이 같아 보여도 실제 접시는 주문에 따라 달라진다. 고추 수, 설탕, 플라라, 게와 땅콩 중 무엇을 넣었는지가 색과 냄새부터 바꾼다.

흰 접시에 풋파파야와 토마토, 마른 새우를 담은 솜땀
풋파파야와 토마토, 마른 새우가 한 접시에 섞여 있다. 바닥의 라임·생선소스 양념을 머금은 마지막 채 몇 가닥은 처음보다 맛이 진하다.사진 Sumit Surai · CC BY-SA 4.0

마지막까지 아삭함이 남는다

솜땀은 첫입과 마지막 입의 맛이 같지 않다. 처음에는 위에 놓인 땅콩과 마른 새우가 많이 잡히고, 시간이 지나면 채가 바닥의 소스를 더 머금는다.

처음의 풋파파야는 가볍고 아삭하다. 이를 대면 짧게 끊어지고, 안쪽에서 차가운 수분이 나온 뒤 라임의 신맛이 따라온다.

중간쯤에는 토마토가 많이 풀린다. 토마토 과육이 소스와 섞이면서 신맛이 조금 부드러워지고 국물은 처음보다 붉고 탁해진다.

고추 조각을 씹으면 매운맛이 갑자기 세진다. 바로 땅콩을 먹으면 고소한 기름기가 잠시 눌러 주지만, 혀끝의 열감은 한동안 남는다.

플라라를 넣은 접시는 향이 점점 강해진다. 채보다 바닥의 국물에 발효 생선 맛이 많이 모여 있어 마지막 몇 숟가락이 가장 짜고 진하다.

솜땀 타이는 마른 새우와 땅콩 때문에 끝까지 씹는 감각이 바뀐다. 부드러운 토마토가 나오다가도 단단한 땅콩 한 조각이 바삭하게 부서진다.

시간이 지나도 풋파파야는 쉽게 흐물거리지 않는다. 다만 가는 채는 소스를 많이 머금어 휘어지고, 굵은 채는 가운데가 단단해 씹는 소리를 남긴다.

매운맛이 센 접시라면 찰밥이나 닭구이가 자연스럽게 손에 잡힌다. 찰밥은 양념을 조금 받아들이고, 닭고기의 구운 향은 라임과 발효 생선 냄새 사이에 다른 맛을 놓는다.

차갑고 아삭한 샐러드라고 생각하고 먹으면 짠맛과 매운맛의 세기에 놀랄 수 있다. 반대로 향이 강한 발효 음식으로만 생각하면 풋파파야의 맑은 수분과 라임 향이 의외로 산뜻하다.

빈 접시에는 땅콩 가루와 고추씨, 토마토 껍질이 조금 남는다. 갈색 소스에는 라임 씨 하나가 보일 때도 있다.

솜땀은 익은 파파야의 단맛을 버린 자리에서 시작한다. 단단한 풋과육을 채 썰고 절구로 두드리자, 과일 한 개가 태국의 가장 선명한 한 접시 가운데 놓였다.

SOURCES

더 확인하고 싶다면

풋파파야의 식용 방식과 솜땀의 재료·조리 순서는 FAO, 태국 관광청, Thailand Foundation 자료를 교차 확인했다. 솜땀 타이와 이산·라오스 계열의 차이는 한 가지 고정 조리법으로 단정하지 않고 공공 자료에서 공통으로 확인되는 재료와 경향만 서술했다. 맛과 식감은 재료의 상태와 절구 조리 과정을 바탕으로 풀었으며, 사진은 Wikimedia Commons의 파일별 저작자와 재사용 조건을 확인했다.

UPDATE TIP정보가 달라졌습니까?수정 제보하기 +

이름이나 연락처는 받지 않습니다. 제보 내용만 편집부에 전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