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게리타 피자는 왕비보다 먼저 있었다

1889년 나폴리를 찾은 마르게리타 왕비를 위해 빨강·하양·초록의 피자를 처음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런데 토마토와 모차렐라를 함께 올린 피자는 그보다 36년 앞선 기록에도 나온다. 왕비가 새로 얻은 것은 첫 한 판이 아니라 오래 남을 이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나폴리 식당의 토마토 모차렐라 바질 마르게리타 피자
사진 pelican · CC BY-SA 2.0

마르게리타 피자의 토마토·모차렐라 조합이 1889년보다 먼저 기록된 사실부터, 나폴리의 값싼 거리 음식이 왕실 일화와 만나 이름을 얻은 과정까지 따라간다. 밀대로 밀지 않는 반죽, 듬성듬성 놓는 치즈, 짧은 시간에 익히는 화덕, 부드러운 한 판을 접어 먹는 방식도 구체적인 맛과 식감으로 살핀다.

한 조각을 들면 끝이 처진다

나폴리식 마르게리타는 접시 위에서도 반듯하지 않다. 테두리는 군데군데 크게 부풀고, 가운데는 토마토와 치즈의 수분을 머금어 낮게 내려앉는다. 한 조각을 들면 뾰족한 끝이 힘없이 아래로 처진다.

바닥까지 단단하게 구운 피자에 익숙하면 덜 익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잘 구운 나폴리 피자도 중심은 얇고 부드럽다. 토마토즙과 모차렐라에서 나온 물, 올리브유가 짧은 굽는 시간 안에 완전히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첫입에는 따뜻한 토마토의 새콤한 맛이 먼저 난다. 이어서 녹은 모차렐라의 순한 짠맛과 우유 냄새가 닿는다. 바질 잎이 함께 씹히면 달고 알싸한 향이 코로 짧게 올라온다.

테두리는 가운데와 식감이 다르다. 겉은 얇게 구워져 살짝 바삭한데 속은 촉촉하고 부드럽다. 손가락으로 누르면 푹 들어갔다가 천천히 다시 부풀어 오르고, 한입 베어 물면 말랑한 속살이 먼저 느껴진다.

갈색 표면에는 작은 검은 반점이 섞여 있다. 얇고 작은 반점에서는 구운 밀 냄새가 나고 장작불 가까이 있던 부분은 향이 조금 더 진하다. 넓게 새까매진 자국은 쓴맛이 오래 남으므로 같은 검은색이라도 맛은 다르다.

토핑은 판 전체에 같은 두께로 퍼지지 않는다. 토마토가 많은 곳은 산미가 선명하고, 치즈가 두껍게 녹은 곳은 부드럽고 고소하다. 바질이 없는 조각에서는 구운 반죽과 토마토 맛이 더 잘 드러난다.

접시에 놓인 뒤에도 맛은 조금씩 변한다. 처음 몇 분에는 토마토의 뜨거운 신맛과 바질 향이 강하고, 온기가 빠지면 치즈의 짠맛과 반죽의 담백한 단맛이 더 잘 느껴진다. 같은 조각도 첫입과 끝의 온도가 다르다.

지금은 이 세 가지 색을 보면 누구나 마르게리타를 떠올린다. 이 간단한 조합이 어느 날 왕비를 위해 갑자기 만들어졌다는 설명도 함께 따라온다. 기록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토마토 없는 피자가 먼저였다

피자와 닮은 납작한 빵은 토마토가 유럽에 오기 전부터 지중해 여러 지역에서 먹었다.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 구운 뒤 기름이나 치즈, 허브를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지금처럼 붉은 소스를 바를 수는 없었다.

토마토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건너와 16세기 유럽 문헌에 모습을 보였다. 곧바로 식탁의 인기 재료가 된 것은 아니다. 한동안 낯선 관상용 열매처럼 다뤄졌고, 남부 이탈리아의 평범한 부엌에 자리 잡는 데 시간이 걸렸다.

18세기 후반 나폴리에서는 토마토를 얹은 피자가 값싼 거리 음식으로 퍼졌다. 골목의 노점이나 작은 가게에서 구워 바로 먹을 수 있었다. 접시와 여러 식기를 갖춘 식사보다 간단했고 뜨거운 반죽 한 장으로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당시 피자는 오늘날처럼 둥근 상자에 담아 여러 사람이 한 조각씩 나누는 음식과도 달랐다. 길에서 손에 들고 먹거나, 집으로 가져가 간단한 한 끼로 삼았다. 토핑이 소박해도 갓 구운 반죽과 따뜻한 토마토만 있으면 맛이 분명했다.

토마토와 마늘, 오레가노, 올리브유를 올린 마리나라 피자도 이 무렵의 흐름에서 나왔다. 이름 때문에 해산물 피자로 생각하기 쉽지만 기본 조합에는 생선이나 조개가 없다. 치즈도 없어 마늘 냄새와 토마토의 짠맛, 신맛이 곧바로 느껴진다.

모차렐라가 올라가면 토마토의 신맛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치즈가 녹은 부분에는 따뜻한 우유 맛과 약한 소금기가 남고, 치즈가 없는 가장자리에서는 토마토 맛이 또렷하다. 한 판 안에서도 한입마다 맛이 달라진다.

마르게리타를 이해하는 첫 장면은 왕궁보다 나폴리의 거리와 가깝다. 붉은 토마토가 값싼 반죽 위에 올라가고, 구하기 쉬워진 치즈가 그 위에 더해지면서 지금과 닮은 한 판이 먼저 생겼다.

수확한 길쭉한 산마르차노 토마토
산마르차노 토마토는 길쭉한 모양과 단단한 과육이 눈에 띈다. 으깬 과육과 즙을 오래 끓이지 않고 반죽 위에 올려 산미와 수분을 남긴다.사진 Jim Lukach · CC BY 2.0

왕비가 오기 36년 전

유명한 일화는 1889년 6월에 시작한다. 이탈리아 국왕 움베르토 1세와 마르게리타 왕비가 나폴리를 방문했고, 피자 장인 라파엘레 에스포시토가 왕실에 세 종류의 피자를 바쳤다고 전한다.

그중 토마토와 모차렐라, 바질을 올린 한 판을 왕비가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빨간 토마토, 흰 치즈, 초록 바질은 통일 이탈리아의 국기 색과도 맞았다. 에스포시토가 왕비의 이름을 붙였다는 결말까지 이어진다.

나폴리의 피제리아 브란디에는 이 일을 기념하는 현판이 걸려 있다. 왕실에서 보냈다는 감사 편지도 오랫동안 소개됐다. 덕분에 1889년의 하루는 마르게리타 피자의 탄생일처럼 알려졌다.

그런데 이탈리아 관광청은 이 이야기를 전설로 구분한다. 프란체스코 데 부르카르드가 1853년에 펴낸 나폴리 풍속 기록에 이미 토마토 피자 위에 모차렐라 조각을 놓는 방식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기록에는 치즈 조각을 ‘마르게리타 꽃처럼’ 놓았다는 설명도 있다. 왕비가 피자를 맛보기 36년 전의 일이다. 토마토와 모차렐라가 만난 피자를 1889년에 처음 만들었다는 설명과 맞지 않는다.

바질까지 같은 방식으로 올린 시점과 ‘마르게리타’라는 이름이 정확히 언제 굳었는지는 재료 조합의 역사와 별개다. 1889년 왕실 방문이 이미 먹던 피자에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붙였을 가능성은 남아 있다.

왕비 이야기가 널리 퍼진 뒤 마르게리타는 나폴리의 흔한 거리 음식에서 이탈리아를 떠올리게 하는 피자로 바뀌었다. 새로운 맛을 발명한 날이라기보다 오래 먹던 한 판이 유명한 이름을 얻은 날에 가깝다.

마르게리타 피자 탄생 100주년을 적은 나폴리 브란디 현판
브란디의 현판에는 마르게리타 피자가 1889년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적혀 있다. 같은 재료의 피자가 1853년 기록에도 등장해, 현판은 조합의 최초보다 왕비 일화가 알려진 장소에 가깝다.사진 Alessandro57 · CC BY-SA 4.0

반죽은 밀대로 밀지 않는다

나폴리 피자의 기본 반죽에는 밀가루와 물, 소금, 이스트가 들어간다. 설탕이나 기름을 섞지 않는다. 그래서 구운 반죽은 단맛과 기름기가 세지 않고 토마토와 치즈의 향을 가리지 않는다.

나폴리피자협회 규정은 전체 발효 시간을 12시간에서 24시간으로 제시한다. 먼저 큰 반죽을 쉬게 한 뒤 한 판 분량씩 잘라 둥근 공 모양으로 만든다. 다시 발효하면서 표면은 매끈해지고 안에는 작은 기포가 찬다.

잘 쉰 반죽은 겉이 마르지 않고 부드럽다.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면 자국이 남았다가 천천히 올라온다. 잡아당기면 바로 끊어지지 않고 얇게 늘어난다.

피자 장인은 반죽 가운데부터 손끝으로 누른다. 누를 때마다 중심에 있던 공기가 바깥쪽으로 밀려난다. 가장자리 1~2센티미터는 누르지 않고 남겨 두며, 이 부분이 화덕에서 부풀어 테두리가 된다.

밀대나 기계식 프레스를 쓰면 가운데만 누르기가 어렵다. 가장자리까지 납작해지면서 발효 중 생긴 기포도 빠진다. 나폴리피자협회가 손으로 펴는 방식을 규정에 넣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죽이 작업대에 달라붙지 않도록 밀가루나 세몰리나를 조금 쓰지만 많이 남기지는 않는다. 바닥에 묻은 가루가 센 불에서 타면 노란 갈색 자국이 생기고, 고소한 맛보다 마른 가루의 쓴맛이 먼저 날 수 있다.

완성된 원은 자로 그린 것처럼 정확하지 않다. 어느 쪽은 조금 두껍고 다른 쪽은 얇다. 손으로 돌리고 늘린 흔적이 남아서 화덕에 들어간 뒤 부푸는 높이도 조금씩 달라진다.

협회 규정에서 반죽 공은 약 200~280그램이고 피자 지름은 22~35센티미터다. 다 구운 뒤 중심 두께는 3밀리미터 안팎에 불과하다. 얇은 가운데와 공기를 품은 테두리가 같은 반죽에서 갈린다.

발효를 위해 둥글게 빚어 덮어 둔 피자 반죽
한 판 분량으로 나눈 반죽은 둥글게 빚어 다시 발효한다. 표면이 마르지 않게 덮어 두며, 충분히 쉰 반죽은 손끝으로 눌렀을 때 부드럽게 퍼진다.사진 Jon Sullivan · Public domain

치즈는 빈틈을 남긴다

마르게리타의 모차렐라는 넓은 치즈 한 장처럼 피자 전체를 덮지 않는다. 작은 조각이나 길쭉한 띠로 잘라 토마토 위에 듬성듬성 놓는다. 화덕에서 녹으면 흰 조각이 있던 자리에 작은 웅덩이가 생긴다.

나폴리피자협회는 한 판에 껍질 벗긴 토마토 60~80그램, 모차렐라나 피오르 디 라테 80~100그램을 제시한다. 여기에 바질 몇 장과 올리브유가 더해진다. 재료가 적어도 가운데가 가볍지만은 않다.

곱게 간 단단한 치즈를 5~7그램 더하는 방법도 규정에 선택 사항으로 들어 있다. 양은 많지 않지만 녹은 모차렐라 사이에서 짠맛과 숙성 치즈 냄새를 보탠다. 모든 마르게리타가 똑같은 향을 내지 않는 한 가지 이유다.

젖소 우유로 만든 피오르 디 라테는 맛이 담백하고 녹아도 형태가 비교적 잘 남는다. 물소젖 모차렐라는 우유 맛과 산미가 더 진하고 수분도 많다. 같은 양을 올려도 토마토와 섞이는 물의 양이 달라진다.

치즈는 너무 두껍지 않게 잘라 물기를 뺀다. 수분이 지나치게 많으면 얇은 중심에 맑은 물이 고이고 조각을 들 때 토핑이 미끄러진다. 반대로 너무 말리면 짧게 구워도 표면이 질기게 굳는다.

소스는 오래 끓여 걸쭉하게 만든 토마토소스와 다르다. 껍질을 벗긴 토마토를 손으로 으깨 소금으로 간하고 그대로 올린다. 과육이 조금 남아 있어 씹을 때 부드러운 덩어리가 느껴지고, 짧게 익혀 산뜻한 신맛도 남는다.

산마르차노 토마토는 길쭉하고 과육이 단단한 편이다. 협회 규정에는 이 품종을 비롯한 이탈리아의 길쭉한 토마토와 여러 작은 토마토가 적혀 있다. 씨를 거칠게 갈면 쓴맛이 날 수 있어 손으로 으깨는 방법도 권한다.

바질은 몇 장이면 충분히 눈에 띈다. 뜨거운 토마토 위에서 가장자리는 어두워지지만 가운데에는 향이 남는다. 씹는 순간 후추처럼 살짝 알싸한 냄새가 나고, 곧 모차렐라의 우유 맛과 섞인다.

마지막에 두른 올리브유는 재료 사이로 흘러든다. 토마토와 치즈에서 나온 물에 섞이면 접시 바닥에 붉고 맑은 즙이 남는다. 테두리를 찢어 이 즙에 닿게 하면 구운 밀 냄새 뒤로 토마토의 짠맛과 산미가 따라온다.

잘라낸 단면과 부푼 가장자리가 보이는 마르게리타 피자
잘라낸 테두리 안에는 크고 작은 구멍이 보인다. 겉은 얇게 구워졌지만 속에는 수분이 남아 부드럽고, 가운데는 토마토와 치즈 때문에 더 촉촉하다.사진 jeffreyw · CC BY 2.0

90초 동안 무슨 일이 생길까

유럽연합의 ‘피자 나폴레타나’ 전통특산품 규격은 장작 화덕 바닥 온도를 약 485도로 적는다. 굽는 시간은 60초에서 90초다. 집 오븐에서 피자를 굽는 시간과 비교하면 매우 짧다.

반죽은 팬이나 철판 위가 아니라 뜨거운 화덕 바닥에 바로 닿는다. 아래에서는 바닥의 열이 반죽을 익히고, 위에서는 돔을 타고 흐르는 불길과 뜨거운 공기가 토핑을 익힌다. 한 판의 위와 아래가 동시에 빠르게 변한다.

피자를 화덕에 밀어 넣으면 불 가까운 가장자리부터 빠르게 부푼다. 반죽 속 수분이 수증기로 바뀌고 발효하면서 생긴 기체도 커진다. 표면은 금세 마르지만 두꺼운 테두리 안에는 수분이 남는다.

불길은 화덕 한쪽에서 타오르므로 가만히 두면 한 면만 먼저 탄다. 피자 장인은 긴 금속 삽으로 가장자리를 살짝 들어 조금씩 돌린다. 바닥의 같은 자리에서 방향을 바꿔야 굽는 온도 차이가 커지지 않는다.

높은 열이 짧게 닿은 반죽에는 갈색과 검은색 점이 생긴다. 얇은 껍질은 앞니에 닿으면 살짝 깨지고 바로 부드러운 속살이 나온다. 오래 태운 부분처럼 딱딱하거나 쓴맛이 강하지 않다.

토마토도 이 짧은 시간 동안 완전히 마르지 않는다. 여분의 물만 조금 줄고 과육은 촉촉하게 남는다. 모차렐라는 겉이 녹지만 질겨질 만큼 오래 익지 않고, 바질도 향을 남긴다.

화덕에서 꺼낸 직후에는 치즈와 기름이 작은 거품을 만들며 움직인다. 너무 서둘러 베어 물면 뜨거운 토마토가 입천장에 닿는다. 잠깐 두면 치즈는 자리를 잡고 향도 더 분명해진다.

그렇다고 오래 식혀 두는 음식도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가운데의 수분이 반죽으로 스며들고, 바삭했던 테두리 표면도 부드러워진다. 유럽연합 규격이 화덕에서 나온 즉시 먹는 상태를 강조하는 이유다.

장작불 가까이에서 빠르게 익고 있는 나폴리 피자
화덕 속 피자는 불 가까운 쪽부터 빠르게 부푼다. 장인은 금속 삽으로 한쪽을 들어 돌리며 60~90초 동안 테두리 전체를 고르게 익힌다.사진 CDibisceglia · CC BY-SA 4.0

접으면 지갑만 해진다

나폴리 거리에서는 한 판을 접어 손에 들고 먹는 피자도 만난다. 반으로 한 번, 다시 한 번 접으면 넓은 원이 손바닥만 한 크기로 줄어든다. ‘피자 아 포르타폴리오’, 지갑처럼 접은 피자라는 이름이 붙었다.

바닥 전체가 바삭한 피자는 두 번 접으면 금이 가거나 부러진다. 나폴리 피자는 가운데가 얇고 부드러워 접힌다. 부푼 테두리는 바깥쪽에 남아 소스가 손에 바로 묻는 것도 막아 준다.

접힌 안쪽에서는 따뜻한 토마토와 치즈가 겹친다. 처음에는 촉촉한 반죽과 녹은 치즈가 닿고, 끝으로 갈수록 여러 겹 포개진 테두리가 씹힌다. 펼쳐 먹을 때보다 한입에 들어오는 소스 양도 많다.

가게에 따라 작은 크기로 구워 종이에 싸 주기도 한다. 길을 걸으며 먹기 쉬운 크기다. 왕비의 식탁보다 앞서 나폴리 사람들에게 피자는 이런 빠른 한 끼였다.

식당에서는 칼과 포크로 먹는 모습도 흔하다. 촉촉한 가운데를 작은 조각으로 잘라 치즈와 바질을 함께 올리면 소스가 접시에 덜 흐른다. 테두리는 나중에 찢어 남은 토마토즙을 묻혀 먹기도 한다.

배달 상자에 들어가면 식감은 다시 달라진다. 뜨거운 김이 빠져나가지 못해 바닥은 더 축축해지고 테두리의 얇은 껍질도 눅눅해진다. 치즈는 식으면서 굳어 화덕 앞에서 먹을 때보다 질겨진다.

나폴리 피자의 부드러움은 접어 먹기에는 알맞지만 오래 들고 있기에는 불편하다. 그래서 주문한 자리에서 바로 먹거나 종이째 받쳐 먹는 풍경이 자연스럽다.

나폴리 거리에서 종이에 싸 들고 먹는 접은 피자
나폴리 거리의 ‘피자 아 포르타폴리오’는 한 판을 두 번 접어 종이에 받친 모습이다. 가운데가 부드러워야 지갑처럼 접어도 바닥이 부러지지 않는다.사진 Fontanalice · CC0 1.0

나폴리 피자는 하나가 아니다

나폴리 안에서도 피자 모양은 모두 같지 않다. 이탈리아 관광청은 크게 ‘루오타 디 카레토’, 클래식, 카노토 같은 형태를 소개한다. 같은 반죽과 화덕을 써도 지름과 테두리 높이가 달라진다.

루오타 디 카레토는 이름 그대로 수레바퀴처럼 넓다. 반죽을 접시 밖까지 퍼질 만큼 얇게 펴고 테두리도 낮게 만든다. 한 조각을 들면 끝이 더 크게 처지고 토마토 맛이 넓고 얇게 퍼진다.

지름이 커져도 반죽 양이 함께 크게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반죽을 더 넓게 펴면 중심이 얇아지고 소스의 수분도 더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접시 밖으로 나온 가장자리는 손으로 집기 전부터 아래로 휘어진다.

클래식 나폴리 피자는 그보다 지름이 작고 테두리가 조금 더 도드라진다. 가운데의 촉촉함과 테두리의 부드러운 씹힘을 함께 느끼기 쉽다. 마르게리타 사진에서 자주 보는 모양도 여기에 가깝다.

카노토는 공기주머니처럼 크게 부푼 테두리가 눈에 띈다. 자르면 안쪽에 큰 구멍이 이어지고, 가운데에 비해 빵 부분의 비중이 크다. 같은 토핑을 올려도 구운 반죽 맛이 더 오래 남는다.

어느 형태든 표면 전체가 과자처럼 바삭하지는 않다. 겉에는 얇은 껍질이 생기고 속에는 수분이 남는다. 다만 테두리의 높이와 넓이에 따라 한 조각에서 반죽이 차지하는 비율이 달라진다.

유네스코가 2017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올린 것도 특정한 피자 한 판이 아니다. 등재 대상은 반죽을 나누고 손으로 펴고, 재료를 올리고, 화덕에서 돌려 굽는 나폴리 피자 장인의 기술과 전승 문화다.

완벽하게 둥근 모양보다 손의 속도와 판단이 더 중요하다. 반죽이 그날 얼마나 부드러운지, 화덕 어느 쪽이 뜨거운지, 치즈에 물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한 판씩 살핀다.

나폴리 피자 장인 다비데 치비티엘로의 흑백사진
유네스코가 등재한 것은 피자 한 종류가 아니라 나폴리 피자 장인의 기술이다. 반죽을 손으로 펴고 재료를 올린 뒤 화덕 안에서 빠르게 돌리는 작업까지 포함한다.사진 Diana Fevola · CC BY-SA 4.0

세 가지 색보다 오래 남는 것

마르게리타 한 판에는 재료가 많지 않다. 그래서 토마토가 지나치게 달면 산뜻한 맛이 줄고, 치즈가 너무 많으면 가운데가 무거워진다. 반죽이 두꺼우면 짧은 시간 안에 속까지 부드럽게 익기 어렵다.

막 나온 피자는 토마토의 신맛과 바질 향이 먼저 느껴진다. 조금 식으면 모차렐라의 짠맛과 반죽의 은은한 단맛이 더 분명해진다. 마지막 테두리에서는 토핑보다 구운 밀과 장작 가까이에서 익은 냄새가 남는다.

한입에 세 가지 색이 늘 똑같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치즈가 없는 곳은 붉은 소스 맛이 강하고, 바질 잎이 놓인 곳은 향이 먼저 난다. 마르게리타의 단순함은 매번 같은 맛보다 조금씩 다른 한입에서 드러난다.

테두리를 가운데의 붉은 즙에 살짝 닿게 하면 식감도 달라진다. 마른 껍질은 부드러워지고, 담백한 속살에는 토마토와 올리브유 맛이 밴다. 접시 바닥에 남은 즙까지 한 판의 마지막 맛이 된다.

테두리도 한 바퀴 내내 똑같지 않다. 불 가까이에서 짙게 익은 곳은 고소하고 살짝 쌉싸래하며, 옅은 곳은 촉촉한 속살과 담백한 밀 맛이 더 많이 남는다. 한 판을 돌려 구운 흔적이 맛의 차이로 이어진다.

1889년 왕비 일화는 이 피자를 설명하기 쉬운 이야기로 만들었다. 하지만 토마토와 모차렐라를 얹은 한 판은 그날 갑자기 나타나지 않았다. 나폴리 사람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비슷한 피자를 굽고 있었다.

왕비보다 먼저 있었던 것은 재료와 굽는 방식이었다. 왕실 방문 뒤에 남은 것은 ‘마르게리타’라는 이름과 빨강·하양·초록을 한눈에 알아보게 하는 이야기였다.

접시 위의 피자를 보면 국기 색보다 먼저 울퉁불퉁한 테두리와 촉촉한 가운데가 보인다. 한 조각을 들었을 때 끝이 아래로 처지는 모습도 그대로다. 나폴리에서 오래 먹어 온 방식은 그 부드러운 한 조각 안에 남아 있다.

SOURCES

더 확인하고 싶다면

1889년 왕비를 위해 토마토·모차렐라·바질 피자를 처음 만들었다는 설명은 이탈리아 관광청이 전설로 구분한 내용을 반영했다. 1853년의 선행 기록, 반죽과 재료 규격, 화덕 온도와 굽는 시간은 공공기관과 나폴리피자협회 자료로 다시 확인했다. 사진은 Wikimedia Commons에서 재사용 조건을 확인한 파일만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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