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 없는 카르보나라

노란 소스가 부드러워 보여도 맛은 꽤 진하다. 양젖 치즈의 짠맛과 구운 돼지고기의 고소한 기름, 검은 후추의 알싸함이 섞인다. 달걀을 넣는 순간 팬이 너무 뜨거우면 소스 대신 익은 달걀 조각이 생긴다.

흰 접시에 담긴 스파게티 카르보나라
사진 Mattes Boch ( Mboch on English Wikipedia) · 형식 변경 · Public domain

노란 달걀 소스에 구운 돼지고기와 치즈, 알싸한 후추가 섞인다. 예전 조리법에는 마늘과 그뤼에르도 들어갔지만, 오늘의 로마식은 관찰레와 페코리노를 쓴다.

하얀 소스를 기대했다면

크림 파스타를 생각하고 로마에서 카르보나라를 주문하면 예상과 다른 접시를 만날 수 있다. 생크림이 흥건한 흰 소스 대신, 달걀과 치즈로 만든 노란 소스가 면에 붙어 나온다. 로마시 관광 안내에 실린 조리법에도 크림은 들어가지 않는다.

맛도 우유처럼 순하기만 한 쪽은 아니다. 달걀노른자의 고소한 맛에 치즈의 짠맛이 꽤 진하게 느껴지고, 씹을 때마다 후추가 알싸하다. 면 사이에 있는 구운 돼지고기를 함께 먹으면 숙성육의 향과 기름진 맛이 더해진다.

크림을 넣은 버전을 구별할 때는 재료 설명에서 ‘panna’를 찾으면 된다. 이탈리아어로 크림이라는 뜻이다. 메뉴 설명이 짧다면 크림이 들어가는지 물어볼 수 있다. 크림이 없는 로마식도 치즈를 사용하므로 유제품을 피하는 사람에게 맞는 음식은 아니다.

치즈와 후추를 올린 로마의 카르보나라
로마에서 촬영한 카르보나라. 노란 소스가 묻은 면 위에 간 치즈를 한 번 더 올렸고, 검은 후추도 보인다.사진 Superchilum · 형식 변경 · CC BY-SA 4.0

예전에는 마늘도 넣었다

그런데 옛 조리법을 펼치면 오늘의 로마식과 다른 재료가 나온다. 이탈리아요리아카데미가 소개한 초기 기록 가운데 하나는 1952년 시카고의 식당 안내서다. 여기에 실린 카르보나라는 돼지 배 부위로 만든 숙성육과 파르미자노 치즈를 썼다. 오늘날 익숙한 관찰레와 페코리노의 조합이 아니었다.

1954년 『라 쿠치나 이탈리아나』에 실린 재료는 더 낯설다. 판체타에 마늘과 그뤼에르 치즈가 들어간다. 이 잡지가 직접 다시 소개한 당시 조리법에서도 확인된다. 카르보나라라는 이름 아래 쓰인 고기와 치즈가 처음부터 한 가지로 정해져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미군의 달걀·베이컨 보급품에서 시작됐다는 이야기, 숯을 굽던 사람들이 먹던 음식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로마시 역시 이를 여러 기원설로 소개한다. 한편 카르보나라를 먹었다는 로마의 신문 기록은 시카고 조리법보다 앞선 1950년에 나온다. 미국에서 인쇄된 레시피만으로 발상지를 미국이라고 할 수는 없다.

관찰레와 베이컨의 차이

로마식 조리법의 관찰레는 돼지 볼과 턱 주변 살을 소금과 향신료로 숙성한 고기다. 판체타는 배 부위를 쓴다. 관찰레를 자르면 두꺼운 흰 지방 사이에 붉은 살코기가 보인다. 팬에서 데우는 동안 지방이 녹아 나오고, 그 기름에도 파스타를 버무린다.

너무 얇지 않게 자른 관찰레는 가장자리가 노릇해져도 속의 지방은 부드럽다. 겉을 씹을 때는 살짝 단단하고, 곧 말랑한 부분이 눌리면서 고소한 맛이 난다. 불을 세게 해 검게 태우면 쓴맛이 나기 쉬워, 갈색이 난 조각은 건져 두고 마지막에 다시 섞기도 한다.

집에서는 구하기 쉬운 판체타나 베이컨으로 바꿀 수도 있다. 다만 훈연 베이컨을 쓰면 달걀과 치즈 사이로 연기 향이 뚜렷해진다. 얇게 썬 베이컨은 작은 조각으로 바삭하게 익고, 두껍게 썬 숙성육은 씹히는 살과 지방이 더 많이 남는다. 고기 이름뿐 아니라 두께도 완성된 면의 식감을 바꾼다.

‘관찰레는 훈연하지 않고 판체타는 훈연한다’고 나누면 틀린다. 실제로 제조사 레보니는 두 고기를 모두 훈연 제품으로 판매한다. 연기 향을 원하지 않는다면 포장의 ‘affumicato’나 ‘affumicata’, 또는 훈연 표기를 확인할 수 있다.

줄에 매달아 숙성 중인 관찰레
숙성 중인 관찰레. 잘라 놓은 고명과 달리, 볼과 턱 주변 살을 다듬은 덩어리의 모양을 볼 수 있다.사진 Carl Tashian · CC BY-SA 2.0

치즈를 바꾸면 간도 달라진다

페코리노 로마노는 양젖으로 만드는 단단한 치즈다. 보호협회 기준에서 갈아 쓰는 제품은 최소 8개월 숙성하며, 식탁에서 잘라 먹는 제품보다 진하고 알싸한 맛이 난다. 겉보기에는 비슷한 단단한 치즈라도 무엇을 갈아 넣느냐에 따라 소스의 향과 간이 달라진다.

이 맛이 강하게 느껴진다면 파르미자노 레자노를 섞는 방법이 있다. 이탈리아 조리 매체 지알로자페라노는 두 치즈를 섞은 부드러운 맛의 변형도 소개한다. 파르미자노는 숙성 정도에 따라 우유나 견과류를 떠올리게 하는 향이 난다. 섞는다고 무조건 덜 짜지는 것은 아니어서, 제품과 넣는 양에 따라 간은 다시 달라진다.

관찰레와 치즈에는 이미 소금이 들어 있다. 짭짤한 면수를 여러 번 더한 뒤 치즈까지 듬뿍 올리면 예상보다 간이 세진다. 집에서 만들 때는 구운 고기와 치즈를 먼저 조금 맛보고 삶는 물의 소금 양을 정할 수 있다. 접시 위에 더 뿌릴 치즈는 마지막에 맛을 본 뒤 결정해도 늦지 않다.

나무판 위에 잘라 놓은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
페코리노 로마노를 자른 단면. 단단한 치즈 속살과 잘려 나간 작은 조각들이 보인다.사진 Deanna · CC BY-SA 2.0

달걀이 몽글몽글해지는 순간

재료를 갖춰도 달걀을 넣는 순간 다른 음식이 되기 쉽다. 고기를 구운 뜨거운 팬에 달걀물을 바로 부으면 작은 덩어리로 익어 버린다. 스크램블에그를 섞은 파스타처럼 되는 것이다. 로마시의 조리법은 달걀과 치즈를 미리 섞고, 팬을 불에서 내린 다음 면에 넣어 빠르게 버무린다.

불을 껐다고 팬이 곧바로 식지는 않는다. 두꺼운 팬에는 열이 오래 남으므로, 불을 끄는 것과 함께 뜨거운 화구에서도 옮겨 놓는다. 면을 건지기 전에는 면수를 따로 덜어 둔다. 이 물과 고기에서 나온 지방이 달걀·치즈 혼합물에 섞여 부드러운 소스가 된다.

달걀이 굳은 것과 수분이 부족해 소스가 되직한 것은 다르다. 알갱이 없이 면끼리 붙기만 한다면 면수를 조금씩 넣어 풀어 볼 수 있다. 반면 달걀 조각이 생겼다면 물을 붓는다고 다시 매끈해지지는 않는다. 면수를 한꺼번에 부으면 묽어지기 쉬우니, 면에 소스가 묻으면서 가닥이 풀리는 정도로 나눠 넣는다.

다만 부드러운 달걀 소스가 곧 충분히 가열됐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날것이나 덜 익힌 달걀을 쓰는 요리에 살균 처리한 달걀이나 살균 난제품을 사용하도록 안내한다. 집에서 같은 질감을 내려면 살균 여부를 확인하고 제품의 보관·조리 안내도 따른다.

면에 노란 소스가 묻은 스파게티 카르보나라
노란 소스를 버무린 스파게티. 면 틈에 소스가 조금 고여 있고 위에는 구운 고기 조각이 놓여 있다.사진 Luca Nebuloni from Milan, Italy · 형식 변경 · CC BY 2.0

스파게티 말고 짧은 면

메뉴에 적힌 ‘spaghetti alla carbonara’는 긴 면이고, ‘rigatoni alla carbonara’는 속이 빈 짧은 관 모양의 면이다. 스파게티는 여러 가닥을 감아 먹으면서 소스가 고르게 묻고, 리가토니는 두꺼운 면 자체를 씹는 맛이 더 크다. 작은 고기 조각과 소스를 한입에 함께 집기도 쉽다.

메제 마니케처럼 리가토니보다 짧은 관 모양의 면을 쓰는 경우도 있다. 사진 속 카르보나라가 바로 이 면이다. 긴 면을 감아 먹는 것이 번거롭거나 도톰한 면을 좋아한다면, 주문할 때 이런 숏파스타가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따뜻할 때 매끈하던 카르보나라도 식으면 소스가 되직해지고 면이 붙는다. 다시 세게 데우면 달걀이 더 익어 처음의 질감과 달라지기 쉽다. 집에서 여럿이 먹을 때는 그릇과 식탁을 먼저 준비하고, 달걀 소스를 섞는 일을 맨 마지막에 두면 덜 바쁘다.

짧고 속이 빈 메제 마니케로 만든 카르보나라
메제 마니케로 만든 카르보나라. 짧게 잘린 관 모양의 면 위로 치즈를 뿌렸다.사진 LuKePicci · 형식 변경 · CC BY-SA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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