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는 토마토보다 먼저 식탁에 있었다

우리가 가장 익숙하게 떠올리는 것은 붉은 토마토소스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면을 말리고 삶아 먹은 시간은 토마토와 만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됐다.

접시에 담긴 토마토소스 스파게티
사진 Benreis · CC BY 3.0

스파게티 위에 붉은 소스가 놓이면 누구나 파스타라고 알아본다. 그런데 14세기 이탈리아 문헌에 등장한 마케로니의 세계에는 아직 토마토가 없었다. 가느다란 면은 치즈와 육수, 향신료를 만났고 때로는 단맛까지 품었다. 파스타의 역사를 따라가면 익숙한 한 접시에서 소스보다 먼저 면의 두께와 건조 방식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르코 폴로보다 먼저 있었다

파스타의 시작을 이야기할 때면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면을 가져왔다는 이야기가 자주 붙는다. 여행에서 돌아온 해는 1295년으로 알려져 있다. 이야기는 단순하고 기억하기 쉽지만, 그의 여행기에는 이탈리아에 파스타를 처음 전했다는 대목이 없다.

그보다 앞선 지중해에는 밀 반죽을 얇게 펴거나 길게 잘라 익혀 먹는 음식이 이미 있었다. 고대의 라가나, 중세의 마케로니와 베르미첼리가 오늘의 파스타와 완전히 같은지는 따로 살펴야 한다. 이름과 조리법이 여러 세기를 건너며 바뀌었기 때문이다.

분명한 장면은 14세기 문학에 나온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는 사람들이 파르미자노 치즈 산 위에서 마케로니와 라비올리를 만들고 닭 육수에 삶는 상상의 나라가 등장한다. 독자가 웃으려면 마케로니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어야 했다.

파스타는 한 사람이 어느 날 발명해 이탈리아에 건넨 음식이 아니었다. 반죽을 익히는 오래된 기술과 말려 보관하는 기술, 지역마다 달랐던 곡물이 겹치면서 여러 종류의 면이 자랐다. 마르코 폴로의 배 한 척으로 시작하기에는 그 전의 식탁이 너무 오래됐다.

시칠리아에서는 면을 말렸다

파스타가 빵과 갈라지는 중요한 순간은 반죽을 말렸을 때다. 수분이 빠진 면은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고, 항구에서 배에 실어 다른 도시로 보낼 수도 있었다. 매일 반죽해야 하는 음식이 거래되는 상품으로 바뀌었다.

12세기 시칠리아를 기록한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는 트라비아 일대에서 실처럼 생긴 음식이 대량 생산돼 여러 지역으로 나갔다고 적었다. 보통 ‘이트리야’라 불린 이 면은 아랍권과 지중해의 건조 면 문화를 보여준다. 오늘의 스파게티와 곧바로 같은 음식은 아니지만, 이탈리아에서 건조 파스타가 마르코 폴로 이전에 유통됐다는 강한 근거다.

시칠리아가 이런 생산지로 자리 잡은 데에는 환경이 맞았다. 듀럼밀은 단단하고 단백질 함량이 높아 물로 반죽한 뒤 모양을 잡기 좋았다. 따뜻하고 건조한 바람은 가느다란 면에서 수분을 빼냈다. 항구는 말린 면을 남부 이탈리아와 지중해 연안으로 옮겼다.

건조는 맛보다 생활 반경을 먼저 넓혔다. 생면은 만든 날의 부엌에 머물기 쉽지만, 마른 면은 창고와 시장과 선박을 거쳤다. 뜨거운 물과 소금, 곁들일 재료만 있으면 먼 곳에서도 한 그릇이 됐다.

1885년경 나폴리 파스타 공장 앞 건조대에 길게 걸린 마케로니
1885년경 나폴리의 제면소 앞. 긴 면이 나무 건조대마다 빽빽하게 걸려 있다. 기계로 같은 굵기의 면을 뽑은 뒤에도 마지막 공정은 거리의 햇빛과 바람에 맡겼다.사진 Giorgio Sommer / Rijksmuseum · CC0 1.0

나폴리의 거리에는 파스타가 걸렸다

19세기 나폴리의 사진을 보면 빨랫줄처럼 길게 늘어진 면이 거리를 채운다. 나무 막대 하나에 수백 가닥이 걸리고, 그 사이로 노동자와 행인이 오간다. 파스타 공장은 건물 안에서 끝나지 않았다.

반죽을 치대고 압력을 가해 구멍으로 밀어내는 기계가 들어오면서 같은 굵기의 면을 빠르게 만들 수 있었다. 1800년 무렵 나폴리에서는 나사식 압출기가 쓰이기 시작했고, 19세기 후반에는 수압식 압출기와 기계 반죽기가 생산량을 더 끌어올렸다. 하지만 면을 뽑는 속도와 말리는 속도는 같지 않았다.

건조공은 날씨에 따라 면을 걸 위치와 간격을 바꿨다. 겉만 빨리 마르면 안쪽 수분이 남아 갈라지고, 습하면 곰팡이나 변질을 피하기 어려웠다. 길고 가는 면을 접지 않고 걸 수 있는 높은 건조대와 나폴리만의 바람이 공정의 일부였다.

인공 건조 기술이 안정되자 파스타는 계절과 날씨에서 조금씩 벗어났다. 공장은 비 오는 날에도 생산을 이어갔고, 포장된 마른 면은 철도와 배를 타고 더 멀리 갔다. 우리가 찬장에서 봉지째 꺼내는 파스타에는 이 건조 기술의 변화가 들어 있다.

토마토는 한참 뒤에 왔다

파스타의 오래된 기록을 읽으면 한동안 붉은색이 나오지 않는다. 토마토는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작물이었고, 이탈리아에 알려진 뒤에도 곧바로 일상 소스가 되지 않았다. 장식용 식물로 보거나 먹기를 꺼린 시간도 길었다.

토마토가 파스타와 만나기 전에는 치즈와 버터, 라드, 육수, 향신료가 면을 감쌌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부유한 식탁에서는 설탕과 계피를 더한 파스타도 낯설지 않았다. 지금의 짭짤한 첫 접시만 떠올리면 놓치기 쉬운 맛이다.

남부 이탈리아의 햇빛 아래 토마토 재배와 보존 기술이 자리 잡자 상황이 달라졌다. 잘 익은 과육을 으깨 끓인 소스는 말린 면에 수분과 산미를 더했다. 값비싼 고기가 없어도 마늘과 기름, 토마토로 한 냄비의 면을 먹을 수 있었다.

1837년 이폴리토 카발칸티의 『쿠치나 테오리코 프라티카』에는 토마토를 졸여 베르미첼리에 버무리는 조리법이 실렸다. 면은 ‘베르디 베르디’, 곧 단단하게 삶고, 소스를 넣어 불 위에서 조금 더 섞었다. 파스타 알 포모도로의 익숙한 장면이 글로 또렷해진 것은 파스타 자체의 역사보다 훨씬 뒤다.

포크 없이 먹던 거리 음식

나폴리의 마케로니는 처음부터 식탁보 위에 놓인 음식이 아니었다. 거리의 행상인은 큰 솥에서 면을 건져 종이나 그릇에 담아 팔았다. 몇 푼을 낸 사람은 가게 앞에 서서 뜨거운 면을 바로 먹었다.

소스가 흥건하지 않은 긴 면은 손가락으로 집을 수 있었다. 면발을 높이 들어 올린 뒤 고개를 젖혀 입 안으로 떨어뜨리는 모습은 19세기 여행 기록과 사진, 그림에 반복해서 등장한다. 오늘 식당에서 포크로 돌돌 마는 자세와는 상당히 다르다.

네 갈래 포크가 긴 면을 먹기 쉽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나폴리 궁정의 시종 제나로 스파다치니가 고안했다는 설이 유명하지만, 포크 자체는 그보다 오래전부터 유럽에서 쓰였다. 한 사람이 파스타를 위해 포크를 발명했다는 이야기로 단순화하기는 어렵다.

도구가 바뀌자 면을 담는 방식도 달라졌다. 손으로 집기 쉬운 비교적 마른 면뿐 아니라 소스가 묻은 면을 접시에서 감아 올릴 수 있었다. 거리의 값싼 마케로니와 귀족 식탁의 포크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출발해 한 접시 위에서 만났다.

모양은 장식이 아니었다

파스타 진열대에는 왜 이렇게 많은 모양이 필요할까. 같은 듀럼밀 반죽이라면 맛도 같아 보인다. 하지만 면의 표면적과 두께, 빈 공간이 달라지면 익는 속도와 소스가 붙는 자리가 바뀐다.

가느다란 스파게티에는 기름과 마늘처럼 매끈하게 흐르는 소스가 얇게 감긴다. 속이 빈 부카티니는 바깥뿐 아니라 구멍 안에도 소스가 들어간다. 펜네의 비스듬한 절단면과 리가토니의 홈에는 잘게 부서진 고기나 치즈가 멈춘다.

넓은 탈리아텔레는 라구처럼 오래 끓여 입자가 생긴 소스를 받아낸다. 오레키에테의 작은 오목면에는 채소 조각이 올라앉고, 푸실리의 나선 사이에는 되직한 소스가 낀다. 모양을 바꾸면 한입에 들어오는 면과 소스의 비율도 달라진다.

1935년 트레카니의 파스타 항목도 모양에 따라 표면과 무게의 비율, 소스의 분포, 익는 정도가 달라져 맛의 차이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파스타 이름을 외우는 일보다 접시를 보면 더 빠르다. 소스가 어디에 머물 수 있는 모양인지 보면 된다.

넓고 가장자리가 물결 모양인 리본 파스타에 소스와 치즈를 곁들인 접시
넓은 면과 물결 모양 가장자리에는 소스와 잘게 간 치즈가 머물 자리가 많다. 같은 반죽도 폭과 굴곡이 달라지면 한입에 들어오는 소스의 양이 달라진다.사진 daryl_mitchell · CC BY-SA 2.0

북쪽의 달걀, 남쪽의 듀럼밀

이탈리아 파스타를 생면과 건면 두 갈래로만 나누면 지역의 결이 흐려진다. 에밀리아로마냐의 부엌에서는 연한 밀가루에 달걀을 넣고 얇게 민 반죽이 탈리아텔레와 라자냐, 토르텔리니가 된다. 노란 반죽은 칼날 아래서 넓은 리본이나 속을 품은 주머니로 바뀐다.

남부의 건면은 듀럼밀 세몰라와 물이 중심이다. 단단한 반죽을 압출 틀에 밀어 넣으면 스파게티, 지티, 펜네처럼 서로 다른 단면이 나온다. 달걀이 없어도 씹을 때 중심의 탄력이 남고, 말린 뒤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이 구분이 지도 위의 단단한 경계는 아니다. 북부에서도 건면을 먹고 남부에도 손으로 빚는 생면이 많다. 풀리아의 오레키에테는 작은 반죽을 칼로 끌어 엄지로 뒤집고, 사르데냐의 말로레두스는 홈이 있는 작은 조각으로 만든다. 기계보다 손의 동작이 모양을 기억한다.

반죽에 달걀이 들어갔는지, 면을 말렸는지, 속을 채웠는지는 소스만큼 접시의 온도와 질감을 바꾼다. 갓 민 생면은 부드럽고 향이 빠르게 올라오며, 건면은 단단한 중심과 거친 표면으로 소스를 붙잡는다.

공장은 표면까지 만들었다

압출 틀의 구멍만 바꾸면 한 반죽에서 수십 가지 모양을 뽑을 수 있다. 이때 틀의 재질도 면의 얼굴을 바꾼다. 청동 틀을 통과한 면은 표면이 희고 거칠다. 매끈한 틀에서는 노란빛이 또렷하고 손으로 만졌을 때 저항이 적다.

거친 표면에는 소스와 치즈가 얇게 달라붙는다. 그래서 포장지의 ‘트라필라타 알 브론조’, 곧 청동 틀 압출이라는 문구는 단순한 전통 장식이 아니다. 유럽연합의 파스타 디 그라냐노 지리적 표시 규격도 청동 틀 사용에서 오는 거친 표면을 제품 특성으로 적고 있다.

건조 온도와 시간도 봉지 속 면을 갈라놓는다. 높은 온도에서 빠르게 말리면 생산은 빨라지지만 색과 향, 조리 중 전분이 나오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낮은 온도와 긴 건조를 내세우는 제품이 있는 이유다. 포장에 적힌 건조법은 삶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공정의 흔적이다.

이탈리아 법령에서 일반 건조 파스타는 듀럼밀 세몰라와 물을 압출하거나 밀어 말린 제품으로 규정된다. 평범한 한 봉지도 곡물의 종류, 압출 틀, 건조 공정을 지나야 비로소 우리가 아는 단단한 면이 된다.

냄비와 팬 사이의 몇 분

마른 파스타는 물에서 끝까지 완성되지 않는다. 냄비에서 건진 면을 소스가 있는 팬으로 옮기면 표면의 전분과 소스의 지방, 남겨 둔 면수가 섞인다. 접시에 따로 담은 면 위에 소스를 붓는 것과 다른 질감이 여기서 생긴다.

알덴테는 면 가운데가 생으로 남았다는 뜻이 아니다. 씹었을 때 중심에 단단한 저항이 남고 겉은 고르게 익은 상태에 가깝다. 면 굵기와 제조 방식이 다르니 봉지의 시간은 출발점일 뿐, 마지막 몇 분을 소스에서 보낼 것인지도 함께 계산해야 한다.

소스가 묽으면 홈이 있는 짧은 면 안으로 스며들고, 치즈와 달걀로 만든 소스는 남은 열에서 빠르게 굳는다. 카르보나라가 팬 위에서 스크램블처럼 되는 순간과 매끈한 크림처럼 면을 감싸는 순간의 차이는 불을 끈 뒤에도 벌어진다.

토마토소스 스파게티 한 접시를 다시 보면 붉은색 아래에 더 오래된 층이 있다. 단단한 밀, 바람에 말린 면, 소스를 붙잡기 위해 달라진 표면과 모양이다. 포크에 감기는 것은 소스만이 아니다.

SOURCES

더 확인하고 싶다면

파스타에는 지역마다 다른 이름과 조리 관습이 있고, 기원에 관한 오래된 설도 많다. 이 글은 이탈리아 백과사전과 정부 법령, 유럽연합의 지리적 표시 문서를 중심으로 확인 가능한 흐름만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