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게트와 트라디시옹

프랑스 빵집에서는 비슷하게 생긴 긴 빵을 다른 이름으로 판다. 트라디시옹에는 재료와 제조법에 관한 조건이 있고, 같은 빵도 껍질을 얼마나 구웠는지 골라 주문할 수 있다.

나무 도마 위에 겹쳐 놓은 노릇한 프랑스 바게트
사진 jules / stonesoup · 형식 변경 · CC BY 2.0

트라디시옹의 재료·제조 기준과 boulangerie 간판의 차이, 르뱅과 Label Rouge 표시의 뜻을 구별한다. 굽기와 반쪽 주문 표현, 단면을 살필 때의 오해, 남은 바게트를 먹는 방법도 담았다.

바게트 옆에 적힌 다른 이름

프랑스 빵집에서 길쭉한 빵 하나를 고르려는데, 진열대에 baguette와 tradition이 따로 적혀 있다. 겉모양은 비슷하다. 어느 쪽을 사야 할지 망설여진다면, 트라디시옹이 무엇을 뜻하는지부터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

‘트라디시옹’은 빵집이 멋대로 붙이는 고급 바게트 이름이 아니다. 1993년 프랑스 법령이 ‘pain de tradition française’라는 명칭의 조건을 정했다. 제빵용 밀가루와 물, 소금으로 반죽하고 효모나 르뱅으로 발효한다. 만드는 도중 급속냉동하지 않으며, 법령에서 정한 첨가물도 쓰지 않는다.

흔히 ‘딱 네 가지 재료로만 만든다’고 설명하지만 허용되는 재료가 더 있다. 법령에는 밀가루 무게에 대해 잠두 가루 2%, 대두 가루 0.5%, 맥아 밀가루 0.3%까지 넣을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농업부의 비교 자료에는 추가 글루텐과 일부 제빵 효소도 일반 트라디시옹에 사용할 수 있는 성분으로 나온다.

이런 재료·공정 제한이 있는 빵을 찾는다면 tradition 표시가 단서다. 반면 그냥 baguette라고 적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냉동 반죽을 썼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 가게에서 어떤 밀가루와 반죽을 쓰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파리 빵집 안에 세워 진열한 여러 바게트
파리에서 촬영한 바게트 진열대. 같은 바구니에서도 껍질의 색과 칼집이 벌어진 정도가 조금씩 다르다.사진 Nick Thweatt · 형식 변경 · CC BY-SA 3.0

그 빵집에서 반죽했을까

문 위의 ‘boulangerie’ 간판에도 조건이 있다. 프랑스 소비법전은 가게가 원료로 반죽을 만들고 발효·성형한 뒤, 소비자에게 파는 장소에서 직접 굽도록 정한다. 제조하거나 판매하는 과정에서 반죽과 빵을 냉동해서도 안 된다.

냉동 반죽을 들여와 굽기만 하는 곳과 처음부터 빵을 만드는 곳을 구별할 때 쓸 수 있는 표시다. 다만 이 조건은 빵에 관한 것이다. 같은 진열대의 크루아상이나 케이크까지 그 자리에서 만들었는지는 이 간판만으로 알 수 없다.

린넨 천 사이에서 길게 발효 중인 바게트 반죽
성형한 긴 반죽을 린넨 천 사이에 놓는 제빵사. 천을 접어 사이를 나누면 반죽끼리 붙는 것을 막을 수 있다.사진 Pancrat · 형식 변경 · CC BY-SA 3.0

트라디시옹은 모두 르뱅빵일까

트라디시옹을 주문했는데 시큼한 맛이 거의 없을 수 있다. 법령은 효모와 르뱅을 함께 쓰거나 둘 중 하나만 쓰는 방식을 모두 허용한다. ‘전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효모를 쓰지 않는 빵은 아니다.

르뱅으로 만든 빵을 찾는다면 ‘au levain’이라는 말을 함께 확인한다. 르뱅은 밀가루와 물을 발효시켜 쓰는 반죽으로, 빵을 부풀리면서 산미와 향에도 영향을 준다. 그래도 르뱅을 썼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시큼한지까지 알 수는 없다. 산미가 부담스럽다면 가게에 맛이 강한 편인지 물어볼 수 있다.

‘Label Rouge’ 표시가 붙은 트라디시옹은 별도 인증을 받은 빵이다. 농업부의 LA 22/01 규격은 르뱅 사용, 느린 반죽, 긴 휴지, 바닥 오븐에서 굽기 등을 요구한다. 이런 제조 방식까지 찾는다면 실제 로고와 인증번호를 확인한다. 일반 트라디시옹에 발효 시간을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다.

크고 작은 구멍과 갈색 껍질이 보이는 바게트 단면
잘라 놓은 바게트. 갈색 껍질 아래로 속살이 보이고, 구멍의 크기는 고르지 않다.사진 Popo le Chien · 형식 변경 · CC BY-SA 4.0

조금 더 구운 것으로 주세요

진열된 빵을 보면 노릇한 것 옆에 갈색이 짙은 것이 놓이기도 한다. 구운 향이 진하고 껍질 씹는 맛이 좋은 쪽을 원하면 ‘bien cuite’, 덜 짙게 구운 쪽을 원하면 ‘pas trop cuite’라고 말한다. 프랑스 문화부의 바게트 문화 조사에도 손님이 이 표현으로 굽기를 고르는 장면이 나온다.

짙게 구운 끝부분은 껍질이 많아 씹을 때 고소한 냄새가 강하고 약간 쌉싸래하다. 가운데를 자르면 부드럽고 촉촉한 속살이 더 많다. 햄과 버터를 넣은 샌드위치로 먹을 때는 너무 단단한 껍질이 부담스러울 수 있어, 진열된 빵 중 색이 옅은 것을 부탁하는 방법도 있다.

혼자 먹기에는 한 개가 크다면 반쪽을 파는지 물어볼 수 있다. ‘une demi-baguette’ 또는 ‘une demi’라고 한다. 반쪽 판매 여부는 가게에서 확인하고, 원하는 빵을 손으로 가리키며 주문해도 된다.

햄과 버터, 햄과 치즈, 살라미와 코르니숑을 각각 채운 바게트 샌드위치
앞쪽은 햄과 버터를 넣은 장봉뵈르, 왼쪽은 햄과 에멘탈 치즈, 오른쪽 뒤는 살라미와 코르니숑을 넣은 샌드위치다.사진 Boulanger: Nat / Photographer: Nat · 형식 변경 · CC BY-SA 4.0

큰 구멍이 많으면 좋은 빵일까

바게트 단면에 구멍이 크게 나 있으면 발효를 잘한 빵처럼 보인다. 그런데 Label Rouge LA 22/01 규격의 사진을 보면 예상과 다르다. 작은 구멍과 중간 크기 구멍이 불규칙하게 섞인 단면을 제시하고, 껍질 가까이에 지나치게 큰 빈 공간이 생긴 상태는 결함으로 구분한다.

파리시의 2026년 바게트 경연도 단면 사진 하나로 순위를 정하지 않는다. 외형과 맛, 굽기, 속살, 구멍의 분포를 따로 평가한다. 큰 구멍이 눈에 띄더라도 빵을 직접 먹어 봐야 알 수 있는 항목들이 남는다.

실제로 먹을 때는 속살이 퍽퍽하지 않은지, 껍질이 탄 맛만 남기지 않는지 느껴볼 수 있다. 버터를 발라 먹는다면 속이 크게 비어 바르기 힘든 빵보다 속살이 적당히 남은 쪽이 편하다. 진열된 빵을 손으로 눌러보기보다는 잘라 놓은 견본을 보거나, 산 뒤 단면과 맛을 함께 살펴보자.

2004년 파리 바게트 경연에서 빵의 향을 살피는 심사위원
2004년 파리 바게트 경연의 심사 장면. 심사위원이 빵을 코 가까이 들어 향을 살피고 있다.사진 David Brabyn · 형식 변경 · CC BY-SA 4.0

내일 먹을 바게트는

바게트는 오래 두고 같은 식감으로 먹기 어려운 빵이다. 갓 구웠을 때 바삭했던 껍질도 시간이 지나면 질겨지고, 속도 조금씩 마른다. 유네스코는 바게트를 하루 동안 작은 양으로 여러 차례 굽는 빵으로 소개한다. 2022년에 등재된 대상도 빵 한 제품이 아니라 장인의 기술과 이를 사고 먹는 생활문화다.

그래서 빵을 고를 때 오븐에서 나온 시각도 궁금해진다. 당장 먹는다면 최근에 구운 것을 물어볼 수 있고, 저녁 식사에 곁들일 계획이라면 식사 시간 가까이 사는 방법이 있다. 따뜻한 빵을 밀폐하면 갇힌 수증기 때문에 껍질이 눅눅해지기 쉬우므로, 집에 가져와 보관할 때는 먼저 충분히 식힌다.

며칠 뒤에 먹을 몫은 빵이 바짝 마른 뒤까지 기다리지 않고 나눠 냉동할 수 있다. 제빵사들의 상담을 다룬 King Arthur Baking 자료는 빵을 완전히 식힌 뒤 공기가 통하지 않게 포장하도록 안내한다. 한 번에 먹을 만큼 나눠 두면 필요할 때 그 분량만 꺼내 데우기 편하다.

이미 하루 지나 굳은 바게트도 다시 먹을 방법은 있다. 껍질을 가볍게 적셔 오븐에서 데우면 속이 부드러워지고 겉에 바삭함이 조금 돌아온다. 다만 다시 식으면 굳기 쉬워 데운 뒤 바로 먹는 쪽에 맞는 방법이다. 얇게 썰어 구워 수프에 넣을 크루통으로 쓰거나, 우유와 달걀을 적셔 팽 페르뒤로 만들어도 된다.

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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