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샤리는 쌀과 렌틸, 파스타, 병아리콩을 따로 익혀 층층이 담고 토마토소스와 마늘식초, 매운 소스, 튀긴 양파를 더하는 이집트의 일상 음식이다. 고대 음식이라는 설명과 인도 키치리에서 곧바로 왔다는 이야기를 문헌과 음식사 자료로 다시 살폈다. 서로 다른 전분을 한 그릇에서 살리는 조리, 다카와 샤타가 만드는 맛의 차이, 학교 앞 수레와 전문점에서 이어진 식사 풍경도 함께 담았다.
숟가락은 양파층부터 깨뜨린다
코샤리 그릇은 맨 위가 짙은 갈색이다. 얇게 썰어 튀긴 양파가 병아리콩과 토마토소스를 거의 가리고 있다. 숟가락을 넣으면 마른 양파가 잘게 부서지고, 그 아래에서 짧은 마카로니와 렌틸밥이 나온다.
첫 숟가락에는 식감이 여러 번 바뀐다. 밥은 부드럽고 갈색 렌틸은 작게 씹힌다. 마카로니는 탱탱하고, 가는 면은 쌀알 사이에서 짧게 끊어진다. 바삭한 양파 조각이 마지막까지 남아 소리를 낸다.
붉은 토마토소스는 파스타 소스보다 묽게 흐르는 경우가 많다. 마늘과 커민 향이 나고 식초의 신맛이 또렷하다. 소스가 많이 닿은 면은 촉촉해지고, 안쪽의 밥은 렌틸과 튀김기름의 구수한 맛을 남긴다.
식탁에는 다카라 부르는 마늘식초가 따로 놓인다. 맑고 묽어서 몇 숟가락만 부어도 그릇 바닥까지 내려간다. 코를 가까이 대면 생마늘 냄새와 식초 향이 먼저 올라오고, 먹고 나면 혀 양옆에 산미가 남는다.
매운 샤타는 다카와 다른 병에 담긴다. 붉은 고추소스나 고추기름처럼 보여 토마토소스와 색이 비슷하지만, 작은 양에도 입술과 목 뒤가 뜨거워진다. 손님마다 붓는 양이 달라 한 식탁에서도 그릇의 맛이 같지 않다.
처음에는 마른 양파가 바삭하지만 식사가 길어지면 붉은 소스를 머금어 부드러워진다. 반대로 아래에 있던 병아리콩은 소스 사이에서도 둥근 모양과 단단한 식감을 남긴다. 한 그릇 안에서 먼저 먹은 숟가락과 마지막 숟가락이 조금 다르다.

피라미드 시대의 음식은 아니다
이집트 음식에는 오래된 곡물과 콩 요리가 많다. 그래서 코샤리도 파라오 시대부터 먹었다는 이야기가 자주 붙는다. 하지만 지금의 코샤리를 이루는 쌀, 렌틸, 파스타, 토마토소스, 병아리콩, 튀긴 양파가 한 그릇에 모였다는 고대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렌틸과 양파를 오래 먹었다는 사실만으로 오늘의 코샤리가 고대 음식이 되지는 않는다. 붉은 소스의 중심인 토마토는 아메리카에서 건너온 작물이다. 지금 흔히 쓰는 짧은 마카로니도 훨씬 뒤의 도시 식품이다.
그렇다고 코샤리의 면을 모두 이탈리아인이 처음 가져왔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중세 아랍어 조리와 의학 문헌에는 이트리야와 샤이리야처럼 여러 형태의 면이 등장한다. 이집트와 중동에는 근대 이탈리아 이주 이전에도 면을 먹는 문화가 있었다.
현재의 그릇이 언제 완성됐는지는 한 날짜로 잡히지 않는다. 음식사가 클라우디아 로든도 1950년대 초 카이로를 떠날 때 코샤리를 기억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같은 시기 다른 동네에서는 이미 팔았을 가능성도 남아 있다.
오래된 조리서 한 권에서 완성형 레시피가 나타난 음식이 아니라, 도시의 재료가 조금씩 보태진 음식에 가깝다. 쌀과 렌틸을 먹던 방식 위에 파스타와 토마토소스, 마늘식초, 양파튀김이 올라갔다. 가게마다 섞는 면과 소스의 농도도 달랐다.
코샤리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가장 분명한 것은 고대의 시작이 아니라 근현대의 확산이다. 길거리 수레와 작은 식당에서 싸고 빠르게 한 끼를 담을 수 있었고,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의 밀집한 거리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키치리와 얼마나 닮았을까
인도와 남아시아의 키치리 또는 키치디는 쌀과 콩을 함께 익히는 음식이다. 곡물이 부드럽게 퍼지는 형태가 많고 향신료와 기름, 채소를 더하기도 한다. 이집트 코샤리의 밥과 렌틸 층을 보면 먼 친척처럼 느껴진다.
코샤리라는 이름과 키치리의 발음이 닮았다는 점도 자주 언급된다. 영국의 이집트 점령과 인도계 병력의 이동을 따라 음식이 전해졌다는 이야기가 여기서 나왔다. 널리 알려진 설명이지만 누가 어느 도시에서 처음 만들었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은 없다.
19세기 중엽 리처드 버턴은 수에즈에서 쌀과 렌틸을 섞은 음식에 관해 적었다. RAWI가 소개한 이 기록에는 오늘날 코샤리처럼 마카로니와 토마토소스가 모두 올라가지는 않는다. 쌀과 렌틸을 함께 먹는 단계가 먼저 보인다.
아랍권에는 쌀이나 부르굴에 렌틸과 튀긴 양파를 곁들이는 무자다라도 오래 먹어 왔다. 클라우디아 로든은 코샤리가 무자다라에서 변했을 가능성도 이야기했다. 쌀과 렌틸만으로 출발점을 한곳에 고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오늘의 코샤리는 키치리와 모양부터 다르다. 재료를 한 냄비에서 푹 익히지 않고 각각 삶아 층으로 담는다. 병아리콩과 두 종류의 면이 형태를 남기고, 튀긴 양파는 젖은 곡물 사이에 마른 식감을 더한다.
이름의 이동과 음식의 이동이 반드시 같은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코샤리라는 말에 남아시아 음식의 흔적이 있을 수 있지만, 식초가 강한 다카와 매운 샤타, 짙은 토마토소스가 들어간 현재 모습은 이집트의 식당과 가정에서 만들어졌다.

면은 한 종류만 넣지 않는다
코샤리에서 밥 위에 올라가는 면은 한 모양으로 통일되지 않는다. 팔꿈치처럼 굽은 작은 마카로니나 짧은 관 모양 파스타가 있고, 스파게티를 잘게 부순 가닥도 섞인다. 가는 버미첼리가 쌀과 함께 익는 집도 있다.
짧은 마카로니는 씹을 때 통통하게 튀고 속으로 소스가 들어간다. 부서진 스파게티는 숟가락 가장자리로 흘러내리며 길게 씹힌다. 버미첼리는 쌀알 사이에 붙어 있어 따로 찾기 어렵지만 볶은 밀 향을 더한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에는 큰 이탈리아계 공동체가 살았다. 이들이 파스타 생산과 유통에 영향을 줬다는 설명은 코샤리 역사에서 자주 나온다. 다만 특정 이탈리아 가정이나 가게가 코샤리에 마카로니를 처음 넣었다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말린 파스타는 오래 보관할 수 있고 큰 솥으로 한꺼번에 삶기 쉽다. 쌀과 렌틸만 담았을 때보다 그릇의 부피도 빨리 늘어난다. 고기를 넣지 않고도 여러 전분과 콩이 배를 채우는 도시 음식이 됐다.
면을 너무 오래 삶으면 토마토소스를 붓는 사이 퍼지고 서로 달라붙는다. 전문점에서는 약간 단단하게 삶아 기름을 가볍게 묻혀 둔다. 주문이 몰릴 때도 국자로 떨어지고 다른 재료 위에 빠르게 퍼져야 한다.
파스타 모양이 달라도 한 그릇에서 역할은 비슷하다. 쌀과 렌틸 사이에 탄력을 넣고, 붉은 소스를 넓게 묻힌다. 숟가락마다 면의 길이가 달라져 전분이 겹친 음식이 한 덩어리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한 그릇인데 냄비는 여러 개다
코샤리는 완성된 모습만 보면 남은 재료를 한데 섞은 음식처럼 보인다. 실제 조리는 반대다. 쌀과 렌틸, 파스타, 병아리콩, 토마토소스, 양파를 재료마다 다른 냄비와 팬에서 준비한다.
갈색이나 검은 렌틸은 껍질이 터지지 않을 만큼 먼저 익힌다. 너무 무르면 밥에 섞을 때 으깨져 그릇 전체가 질어진다. 익힌 렌틸은 손가락으로 누르면 부드럽게 갈라지지만 숟가락으로 뜰 때는 둥근 모양이 남는다.
쌀은 렌틸 삶은 물이나 양파를 튀긴 기름을 이용해 짓기도 한다. 짧게 부순 가는 면을 먼저 볶아 갈색을 낸 뒤 쌀을 넣으면 구운 밀 향이 밥 사이에 밴다. 완성된 밥알은 서로 붙기보다 가볍게 흩어진다.
파스타는 별도 물에서 삶고 병아리콩도 미리 불려 익힌다. 병아리콩은 겉이 매끈하고 속은 포슬해야 한다. 지나치게 무르면 뜨거운 소스 아래에서 껍질이 벗겨지고 모양이 사라진다.
전문점 조리대에는 큰 통이 줄지어 놓인다. 주문이 들어오면 쌀과 렌틸, 면, 병아리콩을 차례로 뜨고 토마토소스와 양파를 얹는다. 미리 준비하는 시간은 길지만 한 그릇을 담는 시간은 짧다.
재료를 따로 익히기 때문에 숟가락 안에서도 모양이 남는다. 밥은 소스를 머금고 렌틸은 작게 씹히며, 면은 탄력을 지킨다. 마지막에 섞여도 각 재료가 완전히 풀어지지 않는 것이 코샤리의 식감이다.

다카와 샤타는 따로 붓는다
코샤리의 붉은 토마토소스에는 마늘과 커민, 고수씨, 식초가 들어간다. 양파와 마늘을 기름에 익힌 뒤 토마토를 넣어 끓이면 생토마토 냄새가 줄고 단맛이 짙어진다. 밥 사이로 내려갈 만큼 흐르되 물처럼 묽지는 않다.
다카는 토마토소스보다 색이 옅고 향은 더 날카롭다. 마늘을 소금과 찧고 식초, 물, 커민을 섞는다. 가게에 따라 레몬즙이나 고수씨를 더하기도 하며, 병을 흔들면 바닥의 향신료가 떠오른다.
다카가 밥에 닿으면 식초 향이 먼저 퍼지고 마늘의 매운 향이 뒤따른다. 렌틸과 병아리콩의 구수한 맛이 더 선명해지고, 튀긴 양파의 단맛도 살아난다. 많이 밴 부분은 소스가 없어도 입 안이 시큼하다.
샤타는 말린 고추나 생고추를 토마토소스, 기름과 함께 끓여 만든다. 처음에는 토마토 맛과 비슷하다가 몇 초 뒤 혀와 입술이 뜨거워진다. 다카가 신맛을 올린다면 샤타는 열감을 더한다.
전문점에서는 두 병을 테이블 가운데 두고 함께 쓴다. 기본 코샤리는 맵지 않게 담고 손님이 샤타를 더하는 방식이 흔하다. 식초는 넉넉히 붓고 고추는 거의 넣지 않는 그릇도 있고, 붉은 기름이 돌 만큼 샤타를 넣는 그릇도 있다.
소스를 붓기 전에는 쌀과 면의 담백함, 렌틸의 구수함이 먼저 난다. 다카를 더하면 신맛과 마늘 향이 먼저 느껴지고, 샤타까지 들어가면 고추 열감이 오래 남는다. 같은 재료를 담은 그릇이 식탁에서 세 가지 맛으로 바뀐다.

양파는 얼마나 짙게 튀길까
코샤리 위에 올라가는 양파는 장식보다 양이 많다. 얇게 썬 양파를 기름에 넣으면 처음에는 희고 축 늘어진다. 수분이 빠질수록 노란색에서 갈색으로 바뀌고 가장자리가 단단해진다.
연한 갈색에서 건지면 단맛이 강하고 조금 부드럽다. 더 짙게 튀기면 손으로 집었을 때 잘게 부서지고 구운 향이 분명해진다. 너무 검어지면 설탕이 탄 쓴맛이 토마토소스까지 덮는다.
기름에서 건진 뒤에도 남은 열로 색이 더 짙어진다. 넓은 쟁반이나 종이에 펼쳐 식혀야 서로 붙지 않는다. 뜨거운 채로 겹치면 김이 차서 바삭함이 빨리 사라진다.
양파를 튀긴 기름은 쌀과 렌틸을 익힐 때 일부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면 양파가 보이지 않는 밥 아래층에서도 달고 고소한 향이 난다. 맨 위의 튀김과 바닥의 밥이 같은 향을 나누게 된다.
처음 한두 숟가락에서 양파는 마른 과자처럼 바삭하다. 토마토소스와 다카가 닿은 조각은 금세 부드러워지고 단맛이 강해진다. 바삭한 조각과 젖은 조각을 함께 뜨면 같은 양파에서도 식감이 두 가지다.
양파가 적으면 코샤리는 부드러운 전분과 콩 식감이 계속 이어진다. 짙게 튀긴 양파가 넉넉하면 숟가락마다 바삭한 조각이 씹히고, 식초의 신맛 뒤에 구운 단맛이 남는다. 그릇 윗면의 갈색이 맛에서도 분명하다.

학교 앞 코샤리가 유산이 됐다
코샤리는 집에서도 만들지만 식당과 길거리 수레에서도 쉽게 사 먹는다. 작은 컵부터 큰 그릇까지 크기를 나눠 팔고, 종이나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가져가기도 쉽다. 학교 주변과 사람이 붐비는 거리에서 자주 보이는 이유다.
고기나 유제품을 넣지 않는 기본 조합은 값이 비교적 낮고 한 그릇이 묵직하다. 쌀과 면이 배를 채우고 렌틸과 병아리콩이 씹는 맛을 보탠다. 이집트의 연구에서는 곡물과 콩을 함께 먹는 코샤리의 단백질 구성을 따로 조사하기도 했다.
가게에서는 주문 소리가 이어지고 국자가 여러 통을 빠르게 오간다. 그릇을 받은 사람은 다카와 샤타 병을 건네받아 자기 몫의 맛을 만든다. 혼자 빠르게 먹기도 하고, 가족과 여러 크기의 그릇을 펼쳐 놓기도 한다.
유네스코는 2025년 ‘코샤리, 일상의 음식과 관련 관습’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올렸다. 쌀과 파스타를 섞은 레시피 한 장만 등재한 것은 아니다. 집과 식당, 노점에서 이어지는 조리와 나눔, 기술 전승을 함께 기록했다.
유네스코 자료에는 코샤리 식당 주인과 직원, 거리 상인뿐 아니라 곡물을 기르는 농부와 수레를 만드는 장인도 등장한다. 동네와 가정에서 배운 조리법은 방송과 소셜미디어, 요리 교육으로도 전해진다. 한 그릇 뒤에 여러 사람의 일이 이어져 있다.
코샤리를 먹은 뒤 쌀푸딩을 파는 가게가 가까이 있다는 설명도 유네스코 기록에 남았다. 식초와 고추가 입에 남은 다음 차갑고 달콤한 우유 푸딩을 먹는다. 카이로의 한 끼는 빈 코샤리 그릇 옆에 작은 디저트 컵이 놓이면서 끝나기도 한다.
더 확인하고 싶다면
코샤리를 고대 이집트 음식이나 인도 키치리의 직접 복제로 단정하지 않았다. 19세기 여행 기록과 음식사 연구, 이집트 공공자료를 함께 보고 현재 조합의 형성 과정은 여러 설로 구분했다. 2025년 유네스코 등재 내용은 공식 대표목록 설명을 기준으로 확인했다. 사진은 Wikimedia Commons에서 재사용 조건을 확인한 파일만 골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