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시대에 손으로 만든 ‘Zine’은 왜 해마다 2만 명을 불러 모을까?

복사기로 몇 장을 찍고 스테이플러로 묶어도 책이 된다. 출판사의 선택과 플랫폼의 알고리즘을 건너뛴 이 작은 출판물은 이제 서울의 미술관과 책방, 청소년센터까지 들어왔고 국내 최대 아트북페어에는 해마다 2만 명 넘게 모인다.

진을 펼쳐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사진 The Museum of Reclaimed Urban Space · CC BY-SA 4.0

진(Zine)은 magazine이나 fanzine에서 나온 말로, 거대 출판사의 심사를 거치지 않고 만드는 사람이 글과 사진, 종이와 판형, 편집·인쇄·부수·유통을 직접 정하는 소규모 독립출판물이다. 복사한 종이 한 장을 접어도 만들 수 있어 상업 출판과 온라인 플랫폼에서 자리를 얻기 어려운 개인과 공동체가 자기 경험을 기록하고 교환하는 데 쓰여 왔다. 이 오래된 방식이 지금 다시 이슈가 된 이유는 2026년 3월 한국의 진 문화를 1987년부터 되짚은 전시를 시작으로 서울형책방, 서울사진미술관, 하자센터의 제작 프로그램까지 공공 문화 공간에 연달아 들어왔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아트북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도 2024년 225팀 이상과 해마다 2만 명 넘는 관람객을 모았고 2025년에는 역대 최대 251팀이 참가했으며, 올해 행사는 11월 6~8일로 예정돼 있다. 다만 2만 명은 아트북과 굿즈를 포함한 전체 관람객이지 진 판매량이 아니며, 행사 밖 유통과 제작자 수익은 여전히 어렵다.

2026년 3월, 진이 독립서점을 넘어 공공 문화 공간으로 들어왔다

이번 이슈의 시작점으로 잡을 수 있는 시기는 2026년 3월이다. 서울 신도시에서 열린 ‘한국의 진 도서관’은 국내 진 문화를 1987년부터 오늘까지 단체와 세대별 출판물로 나눠 보여주고 관련 다큐멘터리도 상영했다. 몇 부만 만들어 교환하다 사라지기 쉬웠던 인쇄물을 하나의 연구·기록 대상으로 모았다는 점에서, 진이 독립서점 한쪽의 물건을 넘어 보존해야 할 문화로 다뤄지기 시작한 장면이었다.

그 뒤 진은 서로 다른 공공 프로그램에 연달아 등장했다. 4월 27일 발표된 서울형책방 70곳의 프로그램에는 ‘zine으로 기록하는 시시콜콜 서울’이 포함됐고, 5월 서울사진미술관에서는 열두 명이 세 차례에 걸쳐 사진 진을 만들었다. 8월에는 하자센터가 만 16~24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개인 진과 공동 진을 만드는 무료 열 차례 작업장을 열었으며, 8월 13일에는 각자의 낱장을 모듈형 공동 진으로 설계하는 다섯 번째 수업까지 진행됐다.

이 움직임의 규모를 보여주는 행사가 2009년 시작한 서울아트북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다. 2024년에는 225팀 이상과 해마다 2만 명 넘는 관람객을 모았고 2025년에는 해외 40팀을 포함한 역대 최대 251팀이 참가했으며, 올해 행사는 11월 6일부터 8일까지 예정돼 있다. 지금 진이 이슈인 이유는 종이가 갑자기 새로워졌기 때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주변부에서 이어진 제작 방식이 3월의 기록 전시에서 11월의 대형 페어까지 하나의 문화 일정으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8월 13일 서울에서는 진을 만드는 다섯 번째 수업이 열렸다

하자센터는 8월 5일부터 28일까지 모두 열 차례에 걸쳐 개인 진과 공동 진을 만드는 무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DIY에서 DIWO로’라는 이름처럼 혼자 쓰고 그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각자가 만든 낱장을 모듈처럼 엮어 한 권의 공동 출판물로 바꾸는 과정이며 8월 13일에는 다섯 번째 수업이 이어졌다.

올해 서울에서 진을 만난 곳은 이곳뿐이 아니다. 3월에는 신도시에서 ‘한국의 진 도서관’ 전시가 1987년부터 오늘까지 단체와 세대별 출판물을 모아 보여줬고, 5월에는 서울사진미술관의 서울사진축제에서 열두 명이 사진 진을 만드는 세 차례 수업이 열렸다. 서울시가 선정한 70개 서울형책방 프로그램에도 ‘zine으로 기록하는 시시콜콜 서울’이 포함됐다.

한때 독립서점 한쪽과 작은 행사에 있던 진이 기록 전시와 미술관 교육, 청소년 문화 프로그램으로 옮겨간 셈이다. 갑자기 종이책 시장 전체를 뒤집은 유행이라기보다, 소수의 출판 방식이 오랜 시간 쌓인 뒤 공공 문화의 언어로 번지고 있다는 편이 더 정확하다.

서로 다른 크기와 제본 방식으로 만든 진이 책장에 꽂혀 있는 모습
진에는 정해진 판형이나 제본법이 없다. 복사한 종이를 접어 한 장으로 만들기도 하고 손으로 꿰매거나 소량 인쇄해 묶기도 하는데, 이 불균일함이 대량 출판물과 가장 먼저 갈라지는 지점이다.사진 Sherlock808 · CC BY-SA 4.0

2009년 작은 장터는 251팀이 모이는 아트북페어가 됐다

국내에서 이 흐름을 숫자로 보여주는 행사는 서울아트북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다. 2009년 시작해 독립출판 제작자가 독자에게 직접 책을 건네는 장을 만들었고, 2024년 행사에는 225팀 이상이 참여했으며 서울시 자료는 해마다 2만 명 넘는 관람객이 찾고 개장 전부터 수백 명이 줄을 선다고 전했다.

2025년에는 참가 규모가 역대 가장 많은 251팀으로 늘었고 그중 해외 팀이 40곳이었다. 거대한 출판사가 신간을 공개하는 박람회와 달리, 여기서는 한 사람이 쓴 문장과 찍은 사진, 편집한 순서와 종이 선택까지 한 테이블 위에 올라오며 만든 사람이 독자 반응을 바로 듣는다.

올해 열여덟 번째 행사는 11월 6일부터 8일까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공식 안내서가 ‘수백 팀의 국내외 제작자’와 ‘2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예상하는 만큼 진은 이제 서울의 반복되는 문화 일정이 됐지만, 이 숫자에는 아트북과 포스터·굿즈 관람객도 섞여 있어 모두를 진 구매자로 계산해서는 안 된다.

피드를 올리는 대신 종이를 접으면 편집권이 전부 내 것이 된다

진의 뿌리는 과학소설 팬들이 만든 팬진과 1950~60년대 만화 문화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후 펑크와 페미니즘·퀴어 커뮤니티처럼 기존 매체에서 자리를 얻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유통하는 방식으로 넓어졌다. 출판사의 심사도 광고주의 요구도 없으니 몇 부를 찍을지와 어떤 내용을 넣을지를 제작자가 정한다.

온라인 게시물도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플랫폼이 정한 화면과 추천 순서 안에서 읽히고, 계정이 사라지면 함께 묻히기 쉽다. 반면 진은 종이와 크기, 제본, 페이지 순서까지 내용이 되며 한 사람이 건넨 물건이 다른 사람의 책장에 남는다. Barnard Zine Library가 20년 동안 1만4000점 넘는 진을 모은 것도 온라인에 올리지 않은 친밀한 기록을 보존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진의 경쟁력은 인쇄물이 디지털보다 편해서가 아니라 불편함을 통제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여덟 쪽만 만들어도 완결된 세계가 되고 조회 수가 적어도 실패가 아니며, 행사에서 만든 사람과 읽는 사람이 대화하는 순간에는 플랫폼이 관계의 중간을 차지하지 않는다.

종이와 인쇄소, 독립서점은 웃지만 제작자가 꼭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진이 늘면 소량 인쇄와 리소그래프·제본을 맡는 작업실, 독립서점, 아트북페어 운영자와 워크숍 기획자가 함께 시장을 만든다. 유어마인드가 7월에 연 24만 원짜리 4주 진 만들기 수업은 최대 다섯 명 정원으로 매진됐는데, 진이 완성품 판매를 넘어 배우고 함께 만드는 유료 경험으로 확장됐다는 신호다.

그렇다고 제작자의 수익이 커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수십 부만 찍으면 권당 인쇄비가 높고 행사 참가비와 운송비, 팔리지 않은 재고가 남으며 ISBN과 일반 서점 유통망 밖에 있는 책은 행사가 끝난 뒤 독자를 만나기 어렵다. 서울시가 2024년 행사에서 독립출판은 판매와 수익 창출이 쉽지 않다고 짚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용의 자유에는 책임도 따른다. 개인 경험을 쓰다 타인의 사생활을 드러내거나 허락받지 않은 사진과 이미지를 그대로 인쇄할 수 있고, 소량 출판물은 절판 뒤 기록이 통째로 사라지기 쉽다. 반대로 기관과 브랜드가 진의 거친 형식을 보기 좋은 굿즈로만 가져가면 심사와 자본을 벗어나려던 문화가 하나의 유행하는 미감으로 좁아질 수 있다.

지금의 진은 대중 출판의 대체재보다 작은 목소리의 기반에 가깝다

8월 13일 현재 확인되는 변화는 분명하다. 1987년 이후 국내 기록을 모으는 전시가 생겼고, 서울의 책방과 미술관·청소년센터가 진을 프로그램으로 다루며, 11월에는 2만 명 규모의 아트북페어가 다시 열린다. 제작과 보존, 판매와 교육이 따로 움직이던 단계에서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되는 중이다.

다만 베스트셀러 판매량이나 전체 독립출판 시장 규모처럼 비교 가능한 통계는 아직 부족하다. 2만 명은 페어 방문객 수이고 251팀은 참가자 수일 뿐, 제작자 한 명이 몇 권을 팔고 다음 해에도 계속 만드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종이책의 대부활’보다 ‘작은 출판의 입구가 넓어졌다’고 말해야 하는 이유다.

다음에 볼 것은 2026년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최종 참가팀과 방문객, 행사 밖에서 진을 상시 판매하는 책방의 증가, 워크숍을 마친 첫 제작자가 두 번째 책까지 이어가는 비율이다. 그 숫자가 따라온다면 진은 잠깐 예쁜 종이 물건을 만드는 유행이 아니라 알고리즘 밖에서 목소리를 남기는 출판 기반으로 더 오래 갈 수 있다.

판이 바뀐 순간을 따라간 타임라인

단순 연혁이 아니라 관심과 시장의 방향이 달라진 변곡점만 골랐다.

시점무엇이 달라졌나
1950~60년대과학소설 팬진이 만화 팬 문화의 중요한 출판 경로로 확대
1987~현재2026년 ‘한국의 진 도서관’ 전시가 추적한 국내 기록의 범위
2009서울아트북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 시작
2024언리미티드 에디션 225팀 이상·해마다 2만 명 넘는 관람객
2025역대 최대 251팀 참가·해외 40팀
2026.03~08기록 전시·서울형책방·사진미술관·하자센터로 진 프로그램 확대
2026.11.06~08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언리미티드 에디션 18 예정

얼마나 커졌나: 확인 가능한 숫자와 사건

서로 단위가 다른 숫자를 합치지 않고, 각 자료가 증명하는 범위만 적었다.

지표확인된 변화
2024 페어225팀 이상·연간 관람객 2만 명 이상
2025 페어251팀·그중 해외 40팀
2026 서울형책방55개 책방·15개 움직이는 책방, 모두 70곳
하자센터8월 5~28일·무료 10회·개인 진과 공동 진 제작
기록 기반Barnard Zine Library 20년·1만4000점 이상 소장

떡상 전과 후

구분BEFOREAFTER
공간독립서점과 작은 장터미술관·서울형책방·청소년센터
제작개인이 복사하고 손으로 묶는 소량 출판공동 제작·워크숍·소량 인쇄소로 확대
유통지인 교환과 우편아트북페어·독립서점·온라인 숍
기록절판되면 사라지기 쉬운 물건도서관 소장·연구 전시·공공 프로그램

왜 사람들이 반응했을까

가장 큰 동력은 종이의 향수보다 편집권이다. 피드는 플랫폼이 정한 화면과 추천 순서 안에서 사라지지만, 진은 여덟 쪽만으로도 완결된 세계가 되고 종이와 크기·제본까지 내용이 된다. 조회 수를 기다리지 않고 만든 사람이 독자에게 직접 건네는 관계도 남는다.

여러 요인 가운데 가장 큰 변곡점은 출판사와 알고리즘의 선택을 건너뛰고 제작자가 내용·종이·제본·부수·유통을 모두 정하며 독자와 직접 만나는 것이다. 다만 검색량이나 조회수 하나를 사회 전체의 인기와 같다고 보지 않고, 실제 판매와 참여, 공식 발표와 확산 경로가 함께 움직였는지를 기준으로 삼았다.

누가 돈을 벌었고, 어떤 그늘이 생겼나

직접 수혜자는 소량 인쇄와 리소그래프·제본 작업실, 독립서점, 아트북페어와 워크숍 운영자다. 2026년 7월 유어마인드의 24만 원짜리 4주 진 제작 수업이 최대 다섯 명 정원으로 매진된 것은 진이 완성품뿐 아니라 배우고 함께 만드는 유료 경험이 됐다는 신호지만, 제작자 개별 수익을 증명하는 통계는 아니다.

수십 부 제작은 권당 인쇄비가 높고 행사 참가비·운송비·재고가 남으며, ISBN과 일반 서점 유통망 밖의 책은 행사 뒤 판매가 어렵다. 사생활과 저작권을 제작자가 직접 확인해야 하고, 기관과 브랜드가 거친 DIY 형식을 보기 좋은 굿즈로만 가져가면 자본과 심사를 벗어나려던 문화가 하나의 미감으로 좁아질 수도 있다.

지금도 뜨고 있을까, 다음에는 무엇을 봐야 할까

8월 13일 현재 하자센터에서는 열 차례 진 만들기 중 다섯 번째 수업이 진행됐고, 올해 앞서 기록 전시와 서울사진축제·서울형책방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11월에는 언리미티드 에디션 18이 예정돼 있어 제작과 보존, 판매와 교육이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되는 모습은 확인되지만 독립출판 시장 전체가 급성장했다고 말할 판매 통계는 아직 없다.

다음 신호는 2026년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최종 참가팀·방문객과 행사 밖 상시 판매처의 증가, 워크숍을 마친 첫 제작자가 두 번째 책을 내는 비율이다. 페어 관람객 2만 명에는 아트북과 포스터·굿즈 관람객도 포함되므로 진 판매량과 같게 읽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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