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굴라시는 왜 국물이 많을까

부다페스트에서 굴라시를 주문하면 포크보다 숟가락이 먼저 나온다. 붉은 국물 아래에는 소고기와 감자, 손끝으로 떼어 만든 작은 반죽이 잠겨 있다. 해외에서 익숙한 걸쭉한 고기 스튜를 생각했다면 첫 숟가락부터 예상이 빗나간다.

부다페스트에서 국물 넉넉하게 낸 굴라시
사진 Asif Masimov · CC BY 3.0

대평원의 목동이 끓이던 이름 없는 고기 요리가 ‘굴라시’라는 이름과 붉은 파프리카를 얻은 과정부터, 보그라치 솥과 치페트케가 만드는 식감, 푀르쾰트와 해외식 굴라시가 갈라진 지점을 따라간다.

첫 숟가락은 예상보다 가볍다

부다페스트 식당에서 굴라시가 나오면 먼저 붉은 국물이 보인다. 소고기와 감자, 당근은 국물 아래에 반쯤 잠겨 있고 표면에는 파프리카 기름이 작은 주황색 원을 만든다.

숟가락을 뜨면 볶은 양파와 소고기 냄새가 김을 따라 올라온다. 파프리카 향은 고춧가루처럼 맵게 치고 오기보다 말린 고추의 달큰한 냄새와 약한 쓴맛을 남긴다.

국물은 색만 보면 무거워 보이지만 입안에서는 생각보다 묽다. 소고기 육수의 짠 감칠맛 뒤에 양파의 단맛이 이어지고, 으깨진 감자 가장자리에서 나온 전분이 혀에 살짝 붙는다.

고기는 숟가락 옆면으로 눌러도 결이 갈라진다. 감자는 겉이 부드럽게 풀리고 가운데는 포슬하다. 치페트케는 작지만 쫄깃해 고기와 감자 사이에서 또렷하게 씹힌다.

헝가리의 공식 가치 목록인 헝가리쿰은 구야시를 국물이 넉넉하고 양파와 파프리카, 깍둑썬 감자와 치페트케를 넣는 수프 음식으로 소개한다. 밀가루를 볶아 국물을 걸쭉하게 만드는 조리도 기본 설명에는 없다.

헝가리에서 만나는 굴라시는 해외 메뉴판의 진한 고기 스튜와 첫인상부터 다르다. 이름은 국경을 넘는 동안 남았지만 그릇에 담긴 물의 양은 크게 달라졌다.

헝가리 식사에서 수프는 가벼운 덤이 아니다. 채소 수프부터 굴라시처럼 고기와 감자가 든 진한 수프까지 종류가 많고, 식사의 첫 접시로 자주 나온다. 굴라시 한 그릇이 크면 빵을 곁들여 한 끼가 되기도 한다.

식당에서는 순한 국물 옆에 매운 고추나 파프리카 페이스트를 따로 내기도 한다. 처음부터 냄비 전체를 맵게 만들지 않아 같은 그릇도 한 숟가락씩 매운맛을 바꿀 수 있다. 페이스트가 닿은 자리만 색이 더 짙고 혀끝이 따뜻해진다.

국물 표면에는 붉은 기름이 두껍게 덮이기보다 작은 방울로 흩어져 있다. 숟가락을 기울이면 파프리카 향을 머금은 기름이 맑은 육수와 함께 얇게 흘러내린다.

마지막에 다진 파슬리나 셀러리 잎을 올린 그릇에서는 말린 파프리카 냄새 사이로 풋풋한 향이 난다. 초록 잎을 떠먹은 다음에는 소고기와 양파의 묵직한 냄새가 잠깐 가벼워진다.

헝가리 대평원에 모여 있는 회색소
대평원의 회색소는 목동이 돌보던 소 떼의 모습을 보여준다. 굴라시라는 음식 이름도 소 떼를 돌보는 사람을 뜻하는 구야시에서 나왔다.사진 Nl74 · Public domain

이름은 소 떼를 몰던 사람에게서 왔다

헝가리어로 소 떼는 구여(gulya), 그 소를 돌보는 목동은 구야시(gulyás)라고 부른다. 영어의 굴라시도 이 말에서 나왔다. 처음에는 음식 이름이 아니었다.

헝가리 대평원에서는 회색소 무리가 넓은 초지를 오갔다. 목동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는 날이 많았고, 가지고 나온 고기와 양파를 야외에서 끓여 먹었다.

조리에 쓴 보그라치는 손잡이가 달린 금속 솥이다. 나뭇불 위에 걸 수 있어 부엌이 없는 들판에서도 쓸 수 있었다. 바람이 불면 불길이 세졌다 약해지고 넓은 입구로 김이 빠졌다.

다만 오늘의 구야시 수프가 중세부터 같은 재료와 순서로 끓여졌다는 뜻은 아니다. 오래된 목동의 고기 요리에는 지금처럼 감자와 붉은 파프리카가 들어갈 수 없었다.

18세기 말에는 이 평범한 목동 음식이 뜻밖의 자리에 올랐다. 헝가리 민속학 자료는 1794년 여행 기록에 파프리카를 넣은 고기 요리가 ‘헝가리의 국가 음식’으로 소개됐다고 전한다. 당시 귀족 사회가 오스트리아와 구별되는 상징을 찾던 시기였다.

도시 식당과 가정으로 들어간 뒤 이름과 조리법도 갈라졌다. 헝가리 민속학 연구에서는 국물이 넉넉한 ‘구야시레베시’, 곧 굴라시 수프라는 이름이 1880년대부터 계속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헝가리 민속학 자료에는 1730년 무렵 대평원의 목동이 끓인 고기 요리가 기록돼 있다. 목동들에게는 흔한 조리였기 때문에 특별한 이름을 붙이지 않고 그저 ‘고기를 끓인다’고 말했다고 한다.

18세기 말 인쇄물에는 gulyásos hús와 gulyáshús라는 이름이 보인다. ‘목동식 고기’ 또는 ‘목동의 고기’에 가까운 말이다. 음식을 만든 사람의 직업이 음식 이름으로 옮겨갔다.

처음부터 잔칫상 한가운데 놓인 음식도 아니었다. 대평원에서는 목동과 농민의 일상적인 고기 조리로 여겨졌고, 19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결혼식 같은 큰 모임의 솥에도 자주 등장했다.

오늘날 야외에서 큰 보그라치를 걸고 굴라시를 끓이는 장면에는 오래된 조리 도구와 현대의 모임 문화가 함께 있다. 한 사람이 계속 저으며 간을 보고, 완성되면 솥 가까이 모여 각자의 그릇에 국물을 뜬다.

식당의 작은 보그라치 솥에 담아 낸 굴라시
식당에서는 손잡이가 달린 작은 보그라치에 굴라시를 담아 내기도 한다. 들판에서 불 위에 걸던 큰 솥과 모양은 닮았지만, 이 그릇은 한 사람이 먹는 양을 담은 식탁용이다.사진 alcuin lai · CC BY-SA 2.0

빨간 국물은 나중에 생겼다

지금 굴라시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붉은색이다. 하지만 고추는 아메리카에서 건너온 식물이다. 헝가리에서는 16세기 후반 정원에서 재배한 기록이 남아 있어도 곧바로 일상 양념이 되지는 않았다.

헝가리 민속학 사전은 파프리카가 18세기 말부터 음식에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고 적는다. 값비싼 후추 대신 구하기 쉬운 파프리카를 쓰는 농가가 늘었고, 처음에는 ‘서민의 향신료’라는 인식도 강했다.

파프리카가 들어간 고기 요리는 색이 분명했다. 붉은 국물과 고기, 야외 솥이라는 모습은 다른 유럽 음식과 구별하기 쉬웠고, 19세기에는 헝가리를 보여 주는 음식으로 식당과 요리책에 자리 잡았다.

당시 파프리카는 대부분 매웠다. 헝가리 관광청 자료는 세게드의 팔피 형제가 1859년 씨와 흰 심을 골라내 매운맛을 줄인 édesnemes 파프리카를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순한 품종 재배가 널리 퍼진 것은 그보다 뒤였다.

시장에 놓인 가루는 주홍색부터 짙은 벽돌색까지 다르다. 순한 파프리카는 말린 고추의 단내와 흙냄새를 내고, 매운 가루는 삼킨 뒤 목 안쪽에 열감을 남긴다.

굴라시 한 냄비에도 순한 가루와 매운 가루를 섞을 수 있다. 국물이 빨갛다고 반드시 혀가 얼얼한 것은 아니다. 색보다 먼저 느껴지는 맛은 양파와 소고기, 달큰한 파프리카 쪽이다.

헝가리에서 파프리카를 밭작물로 재배한 초기 기록은 1720년대부터 보인다. 1750년 무렵 세게드와 칼로처 일대에서는 마을 관리의 몫에 파프리카밭이 포함되거나 노동자에게 향신료가 지급될 만큼 재배가 퍼졌다.

1786년 세게드 기록에는 파프리카를 넣은 고기 요리를 paprikás hús, 곧 ‘파프리카 고기’라고 부른 흔적이 남아 있다. 파프리카가 들어간 뒤에는 맛과 색뿐 아니라 음식 이름도 달라졌다.

수확한 고추는 말린 뒤 씨와 꼭지를 손질하고 곱게 빻는다. 충분히 마르지 않으면 가루가 쉽게 뭉치고 풋내가 남지만, 잘 말린 파프리카는 뚜껑을 여는 순간 달큰한 고추 향과 마른 풀 냄새가 함께 난다.

처음의 파프리카는 귀족 식탁보다 농가에서 먼저 쓰였다. 수입 후추보다 가까운 밭에서 구할 수 있었고 매운맛도 강했다. 훗날 굴라시가 헝가리를 상징하는 음식이 되면서 서민의 붉은 가루도 함께 지위가 달라졌다.

부다페스트 시장에 걸린 말린 파프리카
부다페스트 시장에는 말린 고추와 파프리카 가루가 여러 색으로 걸려 있다. 붉은색이 선명해도 순하고 달큰한 제품이 있고, 삼킨 뒤 열감이 남는 매운 가루도 있다.사진 Takkk · CC BY-SA 3.0

파프리카를 넣을 때 불을 낮추는 이유

굴라시는 양파를 잘게 써는 데서 시작한다. 돼지기름이나 식용유에 천천히 익히면 매운 냄새가 사라지고 조각이 투명하고 부드러워진다. 더 익은 가장자리에서는 단맛이 난다.

소고기를 넣으면 차가운 붉은 살이 회갈색으로 바뀌고 양파에서 나온 물과 고기 육즙이 냄비 바닥에 모인다. 생양파의 매운 냄새는 줄고 익은 고기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파프리카 가루는 지방에 닿아야 색과 향이 넓게 퍼진다. 대신 센 불에 오래 두면 금세 갈색으로 타고 쓴맛이 난다. 냄비를 불에서 잠시 내린 뒤 가루를 섞고 곧 물을 붓는 조리법이 많은 이유다.

물이 들어가면 바닥에 붙은 양파와 파프리카가 풀려 국물이 붉어진다. 마늘과 캐러웨이를 넣으면 고추 향 뒤로 따뜻하고 약간 상쾌한 냄새가 따라온다. 토마토와 생고추의 양은 집마다 다르다.

처음에는 양파 조각과 기름이 따로 보이지만 약한 불에서 오래 끓이면 경계가 흐려진다. 양파가 국물 속에서 풀어지고 고기에서 나온 젤라틴이 더해져 묽으면서도 입술에는 얇게 남는다.

밀가루로 걸쭉하게 만들지 않아 소고기와 양파의 맛이 바로 느껴진다. 국물에 빵을 담그면 붉은 기름과 육수가 속살까지 스며들고, 구운 껍질에는 파프리카와 캐러웨이 향이 묻는다.

헝가리 조리법에 적힌 쾨메니(kömény)는 큐민이 아니라 캐러웨이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씨를 깨물면 흙냄새와 함께 상쾌하고 약간 쌉싸래한 향이 나서 소고기 기름과 파프리카의 단맛을 끊어 준다.

캐러웨이 씨는 통째로 넣기도 하고 마늘과 함께 잘게 다지거나 찧기도 한다. 씨가 그대로 남으면 씹는 순간 향이 강하게 터지고, 곱게 부수면 상쾌한 냄새가 국물 전체에 고르게 퍼진다.

보그라치 아래의 나뭇불은 가스레인지처럼 숫자로 조절할 수 없다. 불길이 세지면 솥을 잠시 높이거나 장작을 옆으로 밀고, 끓는 힘이 약해지면 다시 불을 모은다. 파프리카를 넣는 순간에는 이 차이가 쓴맛을 가른다.

여름에는 생고추와 토마토를 넉넉히 넣고, 다른 계절에는 저장한 재료나 페이스트로 맛을 보태기도 한다. 생고추가 많은 국물은 풋향과 단맛이 나고, 토마토가 늘면 붉은색이 짙어지며 산미도 조금 선명해진다.

양파와 함께 익히기 전의 굴라시용 소고기
양파가 부드러워진 뒤 소고기를 넣는다. 오래 익히는 동안 붉은 살은 갈색으로 변하고, 양파는 형태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국물에 풀어진다.사진 gran · CC BY 3.0

오래 끓인 고기는 숟가락으로 갈라진다

굴라시에는 정강이와 어깨처럼 오래 익힐 수 있는 부위를 많이 쓴다. 처음에는 질기고 힘줄이 눈에 띄지만 낮은 온도로 끓이는 시간이 길어지면 단단한 조직이 부드러워진다.

덜 익은 고기는 질기고 결이 잘 끊어지지 않는다. 충분히 익은 조각은 숟가락으로 눌러도 여러 갈래로 벌어지고, 힘줄 부분은 말랑하고 부드럽게 씹힌다.

고기에서 나온 육즙과 젤라틴은 국물에도 섞인다. 표면에 뜬 작은 기름방울에는 파프리카 색이 배고, 그 아래 육수에서는 양파 단맛과 소고기 냄새가 이어진다.

고기가 부드러워질 무렵 감자와 당근, 파슬리뿌리 같은 채소를 넣는다. 처음부터 함께 끓이면 감자가 모두 풀어질 수 있어 고기보다 늦게 냄비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감자 모서리는 끓는 동안 조금씩 닳아 국물을 흐리게 만든다. 한입 깨물면 겉은 국물을 머금어 짭짤하고 안쪽은 뜨겁고 포슬하다. 당근은 그 사이에서 단맛을 낸다.

그릇 바닥으로 갈수록 잘게 떨어진 고기와 으깬 감자가 모인다. 마지막 몇 숟가락은 처음의 맑은 국물보다 조금 더 걸쭉하고 고기 맛도 진하다.

소금은 고기가 익는 동안 국물의 양을 보며 나눠 맞추기도 한다. 야외 솥에서는 물이 예상보다 빨리 줄 수 있어 처음부터 세게 간하면 마지막 국물이 지나치게 짜질 수 있다.

고기를 너무 작게 자르면 감자가 익기 전에 결이 모두 풀어질 수 있다. 한 숟가락에 들어갈 만한 큐브로 잘라야 오랜 시간 끓여도 가운데에 촉촉한 살이 남고, 누르면 두세 갈래로 갈라진다.

대평원식 굴라시에는 당근과 파슬리뿌리뿐 아니라 콜라비 같은 채소가 들어가기도 한다. 흰 뿌리와 콜라비는 감자보다 향이 가볍고, 씹으면 소고기 국물 속에서 은근한 단맛을 낸다.

하룻밤 식힌 굴라시는 표면의 기름이 굳고 국물도 조금 진해진다. 다시 데우면 젤라틴이 풀리며 부드러워지지만 감자 모서리는 전날보다 더 쉽게 부서진다. 첫날과 다음 날의 마지막 숟가락이 다른 이유다.

감자와 고기가 붉은 국물에서 끓는 굴라시
감자와 고기가 붉은 국물 속에서 함께 익고 있다. 감자 모서리에서 나온 전분과 풀어진 양파가 밀가루 없이도 국물에 약간의 농도를 더한다.사진 gran · CC BY 3.0

국물 속에는 작은 반죽도 떠다닌다

굴라시를 뜨다 보면 쌀알보다 크고 수제비보다 작은 반죽이 따라오기도 한다. 헝가리에서는 이것을 치페트케라고 부른다. 길게 뽑는 면이 아니라 손끝으로 떼어 넣는 반죽이다.

이름도 ‘꼬집다’라는 동작과 이어진다. 달걀과 밀가루를 단단하게 반죽한 뒤 손가락으로 옥수수알만 한 조각을 뜯는다. 모양과 크기가 모두 조금씩 다르다.

반죽을 국물에 넣으면 처음에는 바닥으로 가라앉았다가 익으면서 떠오른다. 표면은 매끈해지고 가운데에는 단단한 탄력이 남는다. 오래 끓인 감자처럼 쉽게 으깨지지 않는다.

숟가락 한 번에 감자와 치페트케가 같이 잡히면 식감 차이가 분명하다. 감자는 쉽게 으깨지고 치페트케는 작지만 쫄깃하게 씹힌다.

치페트케에 묻은 밀가루가 소량 풀리면서 국물도 아주 조금 진해진다. 양이 많지 않아 면 요리처럼 무겁지는 않고, 소고기와 채소 사이에 작은 씹을거리가 생긴다.

모든 굴라시에 치페트케가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래도 공식 헝가리쿰 설명에 감자와 함께 이름이 적힐 만큼 익숙한 재료다. 손으로 떼기 때문에 그릇마다 크기가 제각각이다.

굴라시가 끓는 동안 반죽 덩어리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조금씩 떼어 솥에 바로 넣기도 한다. 기계로 자르지 않아 납작한 조각과 둥근 조각이 섞이고, 손에 붙은 밀가루도 소량 국물로 들어간다.

작게 떼어 낸 반죽은 밀가루를 뿌린 판에 잠시 펼쳐 둔다. 표면이 조금 마르면 서로 들러붙지 않아 끓는 국물에 한꺼번에 넣기 쉽다. 크기가 달라도 얇은 조각부터 먼저 떠오른다.

노케들리와 치페트케는 모두 달걀 반죽이지만 모양이 다르다. 노케들리는 부드러운 반죽을 판이나 도구로 밀어 뜯어 더 크게 익히고, 치페트케는 단단한 반죽을 손으로 꼬집어 수프에 넣는다.

치페트케를 너무 일찍 넣으면 오래 끓는 동안 표면이 퍼지고 국물이 더 탁해진다. 고기와 감자가 거의 익었을 때 넣으면 겉은 부드럽고 가운데는 작은 탄력을 남긴다.

푀르쾰트는 국물 양부터 다르다

헝가리 메뉴에서 푀르쾰트를 주문하면 국그릇 대신 넓은 접시가 나온다. 붉은 소스가 고기 표면에 붙고, 옆에는 노케들리 같은 반죽이나 감자, 피클이 놓인다.

굴라시와 푀르쾰트는 양파와 지방, 파프리카, 고기를 쓴다는 점이 닮았다. 그래서 외국어 메뉴에서는 두 이름이 뒤섞이기 쉽다. 하지만 그릇에 남는 물의 양은 확연히 다르다.

푀르쾰트는 적은 수분으로 고기를 익혀 소스를 진하게 만든다. 국자로 국물을 뜨기보다 포크로 고기를 집고 옆의 반죽에 소스를 묻혀 먹는다. 맛도 양파와 고기 쪽으로 더 짙다.

구야시는 물을 넉넉히 붓고 감자와 뿌리채소를 함께 익힌다. 따뜻한 국물이 먼저 목을 지나고 고기와 채소가 뒤따른다. 같은 파프리카 향도 수프에서는 조금 가볍게 퍼진다.

파프리카시도 가까운 친척이다. 푀르쾰트보다 양파와 파프리카를 덜 쓰고 마지막에 사워크림을 섞는 조리가 알려져 있다. 닭이나 송아지처럼 비교적 빨리 익는 고기를 자주 쓴다.

헝가리 민속학 사전은 19세기 중반부터 빈을 거쳐 중부와 서부 유럽에 퍼진 ‘굴라시’가 국물이 적은 고기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한다. 해외에서 굴라시가 스튜가 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푀르쾰트라는 이름은 볶거나 그을린다는 뜻의 동사와 이어진다. 실제 조리는 고기를 새까맣게 굽는 일이 아니라 양파와 지방, 고기에서 나온 적은 수분을 졸여 짙은 소스를 만드는 쪽에 가깝다.

소고기뿐 아니라 돼지고기와 양고기, 사냥한 고기나 내장으로도 푀르쾰트를 만든다. 고기의 종류가 바뀌어도 접시 바닥에 남는 것은 숟가락으로 뜨는 육수보다 고기에 달라붙는 양파 소스다.

곁들인 노케들리는 표면이 울퉁불퉁해 소스를 잘 붙잡는다. 새콤한 오이피클을 한입 베어 물면 진한 양파와 고기 맛이 짧게 끊기고, 다시 소스를 묻힌 반죽으로 손이 간다.

메뉴에서 구야시레베시(gulyásleves)를 고르면 국물이 많은 굴라시 수프가 나오고, 푀르쾰트를 고르면 고기와 소스가 중심인 접시가 나온다. 영어 메뉴의 ‘goulash stew’만 보고 주문하면 이 둘이 뒤바뀌기도 한다.

걸쭉한 소스와 피클을 곁들인 헝가리 푀르쾰트
푀르쾰트는 소스가 고기에 붙을 만큼 되직하고 피클이나 노케들리를 곁들이는 경우가 많다.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먹는 구야시와 접시 모양부터 다르다.사진 Christo · CC BY-SA 4.0

국경을 넘자 굴라시는 더 걸쭉해졌다

오스트리아와 독일, 체코로 간 굴라시는 고기가 많고 소스가 진한 음식으로 변했다. 밀가루로 농도를 내거나 맥주와 와인을 넣고, 빵이나 감자반죽을 곁들이는 조리도 생겼다.

미국의 ‘아메리칸 굴라시’는 더 멀리 갔다. 다진 고기와 토마토소스, 마카로니를 한 냄비에 끓인다. 헝가리 구야시에서 보이는 감자와 치페트케, 맑은 소고기 국물은 거의 남지 않는다.

헝가리 안에서도 굴라시는 한 가지가 아니다. 콩을 넣은 바브구야시(babgulyás), 양고기를 쓰는 지역식, 야외 솥에서 끓이는 보그라치 구야시가 있다.

부다페스트의 식당에서도 국물 색과 건더기는 제각각이다. 어떤 그릇은 당근과 감자가 많고, 어떤 곳은 소고기와 치페트케가 중심이다. 매운 파프리카를 따로 내는 집도 있다.

뜨거운 국물을 천천히 먹으면 처음에는 파프리카와 마늘 향이 선명하다. 온도가 내려갈수록 소고기 기름과 양파 단맛이 더 진하게 느껴지고, 빵은 그 붉은 국물을 빠르게 머금는다.

빈 그릇 바닥에는 잘게 풀린 고기와 파프리카 기름이 얇게 남는다. 처음에는 가볍던 국물이 마지막에는 으깬 감자와 고기 조각 때문에 조금 더 진하다.

20세기 전쟁터의 이동식 취사 차량은 헝가리어로 ‘굴라시 대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굴뚝이 솟은 바퀴 달린 솥의 모양이 대포처럼 보였고, 많은 사람에게 뜨거운 국물을 나눠 주는 음식으로 굴라시가 익숙했기 때문이다.

‘굴라시 공산주의’라는 말에도 음식 이름이 들어갔다. 1960년대 이후 헝가리의 비교적 유연한 사회주의 체제를 여러 재료가 섞인 굴라시에 빗댄 표현이다. 접시 밖에서도 이 이름이 통할 만큼 상징이 컸다.

세케이 굴라시는 이름과 달리 트란실바니아의 세케이 민족에서 바로 나온 음식이 아니다. 작가이자 기록관이던 요제프 세케이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고, 돼지고기와 사워크라우트, 사워크림을 넣어 일반 굴라시 수프보다 훨씬 되직하다.

굴라시 수프는 2017년 헝가리쿰 목록에 올랐다. 목록에 적힌 모습도 국물이 넉넉하고 감자와 뿌리채소, 치페트케가 들어간 구야시레베시다. 고기 소스에 가까운 해외식 스튜와는 구분된다.

고기 중심으로 되직하게 끓인 굴라시
헝가리 밖에서 굴라시는 고기와 소스가 중심인 스튜로 자주 바뀌었다. 국물이 적어 포크로 고기를 집어 먹는 모습은 헝가리의 구야시 수프보다 푀르쾰트에 가깝다.사진 RitaE · CC0
SOURCES

더 확인하고 싶다면

굴라시 수프의 기본 구성과 헝가리쿰 등재 내용은 헝가리쿰 위원회 자료를 따랐다. 목동 음식이 국가 상징으로 바뀐 과정과 파프리카의 보급 시기는 헝가리 민속학 자료, 치페트케와 푀르쾰트의 조리 차이는 헝가리 관광청과 전자도서관 자료를 함께 확인했다. 사진은 Wikimedia Commons에서 재사용 조건을 확인한 파일만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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